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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hoto Nov 19. 2022

리키 아저씨, 나 그리고 사진

잠시 쉬었던 사진을 다시 시작하다.



미국에 이민을 오면서 나는 사진을 다시는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당장 생존과 생계가 문제였기에. 나는 평생 사진만 하면서 살 것이라 생각하고 살다가 미국에 이민을 오면서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사진을 한다는 건 나 같은 이민자에게는 아주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생존과 생계에 매달려서 살다 보니 이민 8년 차가 되었다. 사진이란 걸 완전히 잊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현실은 나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버거워졌다. 

그러면서 사진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해오던 일. 


카메라를 다시 구입하고 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나도 익숙한 일을 다시 한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작업해야 할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가 2007년 9월 말경. 


근처는 목화밭 천지였다. 떨어진 감각을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내서 목화밭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사유지이다 보니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날도 나는 목화밭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목화밭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싶은데 어떡하나 하면서 고민을 하던 차에 커다란 트랙터와 콤바인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트랙터와 콤바인을 따라갔다.

넓은 농장 한가운데까지 따라 들어갔다. 콤바인에서 내리는 분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했다.


이러저러해서 목화밭 사진을 찍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하고 이야기를 하니 그분은 편하게 찍어.라고 말을 해준다. 그게 나와 리키 아저씨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그 목화밭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리키 아저씨와 다른 일하는 분들 그리고 목화밭 , 콩밭을 찍어댔다.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사진에 대한 감을 되찾고 싶었다.


거의 매일 출근하듯이 농장에 가다 보니 리키 아저씨와 많이 친해졌다. 평생을 이 농장을 운영하셨다 한다.

이분을 통해서 나는 미국의 농사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 목화, 밀, 콩 그리고 옥수수에 대해 배우고 눈으로 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농담도 하고 내가 개떡같이 영어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셨다.


가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그분은 주의 깊게 들어주셨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고민거리도 종종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그분은 지독한 아니 아주 열성적인 공화당 지지자였다. 트럼프를 신봉하고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강요를 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자신의 인종에 대한 생각 정치적 생각도 비밀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서로의 비밀은 암묵적으로 입을 무겁게 하는 걸로 했다.


어찌 보면 미국 남부의 보통사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분은 자기 인생에서 제일 후회스러운 것은 대학을 안 간 것이라 했다. 이곳에서 몇 대에 걸쳐 생활하고 자신도 같은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하고 계속해서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살고 있었다. 내가 가끔 타주를 다녀오고 오래전에 외국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종종 질문도 하고 특히 한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셨다. 나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답을 해드렸다.


그렇게 그분과 우정을 쌓으면서 그리고 내가 떨어진 사진에 대한 감각을 되찾으면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우리 동네에 큰 자동차 공장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리키 아저씨와 그 이야기를 했다. 


가만 들어보니 그 공장 부지가 리키 아저씨의 농장이었다.


평생을 그 농장에서 일을 하신 분인데 하루아침에 그 일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 농장이 리키 아저씨의 땅인 줄 알았는데 ( 속으로 엄청난 부자군.이라 생각했었다. 그 농장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농장 가운데서 바라보면 모든 방향에서 지평선이 보였다) 그 땅은 시로부터 임대를 받아 경작을 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 공장이 들어오면 리키 아저씨는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맘대로 나의 비밀의 정원 같은 이곳을 돌아다닐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저씨는 당장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 걱정 안 한다라고 하셨다. 



발표가 났다. 예상대로 아저씨의 농장에 그 공장이 들어온다 한다. 


고속도로가 인접해 있고 철도도 있고 평평한 땅이고 여러모로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래도 리키 아저씨는 꾸준히 농사를 지었다. 나도 계속 그곳에서 사진 작업을 했다.


멀리서 땅 고르기를 하는 게 보인다. 점점 리키 아저씨의 경작지가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나는 더더욱 사진을 많이 찍기 시작했다. 나에게 떨어진 사진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준 그 농장을 더 많이 기록했다. 나의 비밀의 정원이기도 한 이 농장을 내 기억 속에도 더 담아두려고 했다.


어느 날 농장을 가는 길목이 막혔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쓰여있고 커다란 문이 길 한복판을 막았다.


리키 아저씨의 장비들은 ' 팝니다'라고 써붙여 있었다.



리키 아저씨는 여전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작게 농사를 짓고 계신다. 예전에 비해서는 규모가 말도 안 되게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평생 해오던 일을 그만 둘 수가 없기에. 

종종 나에게 여름철이면 보내주셨던 옥수수. 내 평생 그렇게 맛난 옥수수는 처음였던듯했다. 그 옥수수를 어떻게 해야 더 맛있게 먹는지도 알려주셨고 옥수수 껍질을 벗기다가 툭 하고 튀어나온 애벌레에 엄청 놀라기도 했던. 



나의 사진에 대한 감각을 다시 되살려준 그 농장 그리고 리키 아저씨. 

지금은 그곳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내가 들어갈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종종 찾아간다. 

나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던 곳


리키 아저씨는 다행히 잘 지내고 계신다. 슬슬 은퇴를 준비하신다. 그간 다니지 못한 여러 곳을 다닐 것이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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