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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후 조리원은 없나요?
07화
뫼비우스 띠에 갇혔다.
돌고 돌아도 제자리.
by
Kimplay
Jun 20. 2021
자궁경 수술은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
그 사실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혹시 못 깨어나면 그대로 가는 건가.'
이런 방정맞은 생각도 조금 했다.
수술 당일, 내 차례를 기다리는 건 아주 긴장된다.
순서가 되면 갑자기 의료진이 병실로 들어와
병상에 달린 바퀴를 돌돌 밀며 이동시킨다.
물론 알고 있지만, 막상 겪어보니 누군가가 쳐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갑작스레 끌려나가는 감정도 든다.
바닥을 구르는 바퀴의 거친 진동이 다 느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까지 가는 과정은
멀미가 난다. 가만히 누워서 보는 하얀 천장과 휙휙 지나가는 조명,
서성이는 사람들. 이 모든 게 어지럽고 숨 가쁘다.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유산으로 인해 이미 두 번의 소파수술을 했다.
자궁에 무리가 갔을 것이다. 상처는 없는지, 유착된 부분은 없는지
자궁검진을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수술은 잘 끝났다. 다행히도 자궁을 적출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비로소 적출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궁에 남아있던 것은 소파 수술 잔여물(태반조직)이 맞았고,
자궁 동정맥기형으로 미리 색전술을 한 것은 다행이었다.
자궁 상태는 괜찮으며 유착은 없다고 했다.
참 오랜만에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문제의 연속이었던 지난 몇 달들이 위로받았다.
이제 큰 산을 넘었나, 하고 겨우 고개를 들었더니
결핵약 부작용이 우뚝 솟아있었다.
'아, 나 결핵 환자였지.." 잠시 잊고 있었다.
순간, 나는 여기저기에서 물어뜯기는 기분이 들었다.
잊은 것들 사이로 어릴 때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내게 엄마는 항상
"강아지를 보면 뛰지 말고 걸어가.
뛰어가면 같이 놀자는 줄 알고 쫓아와."라고 했지만,
실천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강아지만 보면 무서워서 뛰었다.
어느 날은 학교에 가다가 골목 가운데 서 있는 강아지를 보
고
냅다 뛰었다.
역시 강아지는 쫓아왔고, 나는 낯선 동네 골목에서
강아지에 포위돼 빙글빙글 돌며 울었다.
강아지도 나를 따라 빙글빙글 돌며 짖었다.
그때 기억은 아직도 강아지를 보면 슬금슬금 도망가게 한다.
현재로 돌아오니 커다란 대학병원 안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어린 나처럼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더 다치지 않으려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뛸 힘도 없었다. 그쯤 되니 나의 2018년이 통째로 뫼비우스 띠에 갇힌 것 같았다.
돌고 돌아도 제자리인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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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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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유산 후 조리원은 없나요?
05
갑자기 결핵환자가 되었다.
06
자궁 색전술을 했다.
07
뫼비우스 띠에 갇혔다.
08
세 번째 몸조리
09
난임 병원 상담을 다녀왔다.
유산 후 조리원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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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충전 에세이 <콧구멍워밍업> 저자 내가 겪은 낯선 일들과 계속 머물고 싶은 평온한 일상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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