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두리에서 나를 외치다.
주인공은 나야 나
첫째가 어린이집 적응기간을 마치고 낮잠까지 자고 오던 날, 생각했다.
'이 날을 위해서 내가 26개월을 달려왔구나.'
2년여 만에 주어진 6시간의 해방감은 엄청났다.
그리고 그 시간이 더 간절해진 건 둘째의 등장 때문이었다.
과거 둘째 얘기를 꺼내던 남편에게
병든 아내와 살고 싶냐고 겁박하던 내가, 최근에 둘째를 낳았다.
육아는 행복만큼 매우 힘듦이 동반되었다. 솔직히 자주 '매우 힘듦'이 우세하다.
정말 육아는 나를 갈아 넣는 일이었다.
웃픈 비유를 하자면
회사는 출퇴근이라도 있지, 나는 심지어 솔거 노비다.
처지는 노비인데 1인 사업가 마인드로 홀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먹다가도, 자다가도 일해야 한단 말이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노동도 상당한데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피곤함,
그 말의 대부분은 '안돼.'라는 점. 안돼봇이 된 듯한 자괴감과
그럼에도 개선되지 않을 땐 '어쩌면 내가 금쪽이를 키우고 있나 보다.' 하고 현타가 온다.
"오은영 선생님이 천 번, 만 번 말해줘야 된다던데.. 나 천 번은 말한 것 같아.. "
넋이 나간 내게 남편이 말한다. "우리 앞으로 엄청 행복할 것 같아."
남편의 뜬금없는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말에 잠깐 꽃길을 걸어본다.
그사이 남편도 첫째를 달래느라 넋이 나가 있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1개월 24일이 됐다. 그건 내가 출산한 지도 그만큼 됐다는 말이다.
나는 다시 시작된 밀착 육아로 내 삶이 변두리로 밀려날 것을 안다.
한동안 나의 시간들은 아이들을 수비하는데 쓰일 것이다.
이 사실은 마냥 즐겁지도, 그렇다고 억울하거나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당연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까 하소연해 보는 거다.
얼마 전, 남편에게 고백했다.
"내 하루가 육아로 꽉 차 있지만, 그래도 난 내 인생에 주인공이고 싶어."
내 삶의 주인공 자리는 내려놓지 않겠다는 말은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의지가 됐다.
그래, 나는 지금,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가 주인공인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