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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콧구멍 워밍업

3-2. 실컷 맡아보자, 냄새 [냄ː새] 세 번째

by Kimplay

<싱싱하고 생기 있는 산>


“봄이 가장 좋다.”


맑은 날, 엄마는 연둣빛 산을 보고 소녀처럼 말했다. 엄마는 겨울을 보낸 나뭇가지에 뾰족이 올라온 새싹을 좋아한다. 봄이면 함께 길을 걷다 가도 식물들의 초록을 구경하고 응원하기 바쁘시다.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산은 뾰족이 올라온 새싹들 덕분에 연둣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산을 그렇게 올라갔는데.”


이어지는 말은 다시 육십 대 할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몇 해에 걸쳐 수술받은 엄마는, 이제 오르는 대신 산자락 아래 밭을 찾아다닌다. 쑥을 캐기도 하고, 상추씨를 뿌리기도 했다. 올봄에 파종할 씨앗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봄바람에서는 여전히 싱싱하고 생기 있는 풋내가 났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오르던 봄날의 산에서도 이런 냄새가 났었다.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어린 시절, 집 앞에 나가면 늘 친구들이 있었다. 점점 높이 올라가는 고무줄에 닿으려고 뛰어오르거나, 바닥에 분필로 선을 그어 땅따먹기 하며 놀았다. 해 질 무렵에는 제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낮 동안 뜨겁게 뛰어논 아이들이 빠진 자리에는 칙칙 밥 끓는 소리가 밀려와 내내 훈기가 돌았다.


주말이 되면 같이 뛰놀던 친구들과, 밥을 짓던 엄마들이 동네를 벗어나 산으로 갔다. 봄이면 날씨가 좋아서, 여름이면 하늘이 푸르러서 가을이면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을 구경하러 산에 올랐다.

산에 가기 전, 엄마는 배낭에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을 넣고 따뜻한 물을 챙겼다. 산에 오르면 엄마는 더 젊고 즐거워 보였다. 풀잎을 입에 물고 피리를 불거나, 내가 모르는 풀과 꽃의 이름을 아는 엄마 덕분에 산은 늘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한참오르다가 고른 땅을 발견하면 자리 잡고 앉아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고, 드디어 먹는 컵라면은 참 맛있었다. 뜨끈한 라면 국물까지 마시고 나면 이제 내려갈 차례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나는 오르막길은 친구들보다 잘 올라갔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앞선 엄마 손을 잡고 앉다시피 기어 내려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토끼띠라 그런가, 내리막을 잘 못 내려와.” 하면 모두가 웃었다.

찾아보니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 내리막에서는 느리단다. 나도 거의 네 발로 내려왔으니 뒤쪽 다리가 더 긴 건 맞는 말이었다. 이쯤 되니 나는 정말, 내가 토끼띠라서 내리막에 약하다고 생각했다. 쥐띠 우리 엄마는 날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내렸으니 말이다.



“우리 라면 먹을까?”


내가 물었더니, 산에 두고 있던 엄마의 시선이 온다.


“좋지!”


컵라면과 보온병 대신, 물이 끓는 냄비에 라면 두 개를 넣었다. 산에서 먹는 컵라면만은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끓여본다. 라면을 마주하고 앉아 엄마에게 넌지시 물었다.


“엄마, 나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절절매던 거 기억나?”

“그럼, 기억나지. 그때 참 재미있었어.”

“꼭 컵라면도 먹었잖아.”

“응. 컵라면 들고 저 산을 그렇게 올라갔는데.”


엄마가 다시 산을 올려다본다. 그 눈에 그리움이 보이는 것 같았다. 괜한 말을 해서 엄마를 울적하게

만들었나 싶어 후회하고 있는데, 엄마가 말을 잇는다.


“다음 주에 주말농장 갈래? 거기서 보는 산도 멋져. 상추 따서 고기 구워 먹자.”


엄마에게서 초보 농부의 싱그러운 풋내가 났다. 엄마는 여전히 나보다 내리막을 잘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벌써 새 오르막을 찾아 오르고 있었다. 엄마는 겨울을 잘 보내고 다시 뾰족이 올라온 새싹이었다.

엄마가 라면을 후후 불었다. 풀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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