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나요!?

임종면회 가는 길(1)

by 킴프로


“지금 올래?"



섬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아빠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아빠는 오래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연명치료를 거부한다고 서명을 해 두었고, 우리 가족 모두는 당연하게 아빠의 의사를 존중했다. 집중 치료실로 옮겨 영양제와 혈압강화제만 사용하고 이외 모든 치료를 중단하게 된 그즈음부터는 아빠와 정상적인 통화도 할 수 없었고, 하루 중 의식이 분명한 시간이 점점 짧아져 엄마도 잘 알아보지 못하신다 했다.


아빠가 우리를 떠나기 딱 1주 전이었다. 아빠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툭.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며 매 순간이 불안했고, 때로는 내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엄마의 전화를 기다릴 수도 기다리지 않을 수도 없는 날들이 나를 끊임없이 혼동하게 했다.


그렇게 하루를 넘겨 아침이 되면 잠깐 안심했고, 다시 오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에 휴대전화 진동이 울리면 심장이 또 쿵.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모든 게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자다가도 연락이 오면 병원으로 즉시 출발 할 수 있도록 외출복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바로 메고 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소지품을 꾸려놓은 배낭도 침대 옆에 비스듬히 세워 두었다.


그날도 외출복을 입고, 넓은 침대 한 구석에 웅크리고 누운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평소 듣지도 않는 종교 음악을 틀어 놓고 불안한 생각을 머리 한 구석으로 애써 밀어내고 있었다.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 눈을 떴다. 잠깐 잠들었는지 한동안 정신이 없어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자 휴대전화에 발신자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쿵쾅거렸다.



"지금 올래?"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채비를 모두 마쳐두었던 터라 집을 나서는 데는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류장에 정차하고 있던 택시를 잡아 타고 목적지를 말했다. 택시 기사는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병원에 가냐는 질문이기도 혼잣말이기도 한 듯한 말을 뱉었다. 나는 차마 있는 그대로 '제 아빠 임종 면회를 하러 갑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어 그저 "…네"라고만 하고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새벽이라 도로가 텅 비어 택시는 빠른 속도로 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지금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엄마 아빠는 나에게 올 수가 없는데?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 올림픽대로에 진입하자 한강이 보였고, 택시에서 흘러나오던 새벽 라디오 방송에서는 2001년 12월에 발매된 이승환의 '사랑하나요!?'라는 가요가 시작됐다.




나도 그댈 사랑해

그대보다 더 오래오래

평생 웃게 해 줄게

우리 둘이서 같이 산다면




그 와중에도 음악이 귀에 들어왔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찬 상태였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어쩜 이렇게 극적일 수 있을까. 아빠의 죽음을 마주하러 가며 듣는 이 노래. 이승환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밝은 분위기의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의 찬가는 나를 영원히 가슴 아프게 만들 작정이었다.






코로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간 지 오래였지만, 대형병원만큼은 그리고 격리 병동은 달랐다. 상주보호자를 1명으로 지정하고, 이외의 가족들은 입원 환자는 물론 그 상주보호자와도 접촉할 수 없었다. 무려 9개월 동안 나는 아빠와 엄마를 만날 수 없었고, 나는 마치 고아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빠의 임종이 다가오자 병원에서는 비로소 자녀의 출입을 허가했다. 9개월 만에 아빠를 정식으로 만날 수 있도록 마련해 준 자리에서 아빠의 죽음을 지켜보라니. 집중치료실까지 네 번의 관문을 통과하고 마침내 마주한 아빠는 나에게 인사는커녕, 눈을 떠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을 감고 누운 채로 호흡하는 것뿐인 더미에 불과했다.


그것은 내 아빠가 아니었다.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아빠가 누워있는 침대 하나와 그 옆에 낮게 붙어있는 폭이 좁고 부실해 보이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기다란 물체. 그것이 보호자용 간이침대일 줄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아빠의 몸에 연결돼 무서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수개의 의료기기들로 가득 찬 치료실. 이런 곳에서 9개월을 버텨내고 있는 엄마를 생각하자니 너무 안타깝고 기가 막혀 아빠를 보러 온 것은 잠시 잊었다. 엄마의 얼굴과 치료실을 번갈아 둘러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잠깐의 그 눈물은 아빠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2편에서 계속...)


토요일 연재
이전 02화위로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