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돌아가셨어."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10월의 오후.
그 해 1월의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을 거쳐 네 번째 계절이 올 때까지도 여전히 상주보호자로 홀로 병간호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점심끼니를 전달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 놓고, 한참 동안 답이 없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병원 정문 앞 화단에 걸터앉아 '날씨가 이렇게도 좋은데, 우리는 왜 하필 이토록...' 하는 생각에 잠겨 눈물을 억지로 삼켜내고 있던 참이었다. 기다리던 전화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나도 따라 울며 말했다.
"엄마 울지 마..."
이 말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그것도 내 아빠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난생처음 듣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곁에 아무도 없이 아빠의 임종을 지켰던 엄마가 혹시라도 울다 쓰러질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상주보호자 외에는 아무에게도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병원은 지금 막 사망선고를 받은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자격을 내게 부여하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 방문객과 차량으로 복잡한 대형병원 앞 인도를 따라 길게 설치되어 있는 화단에 그대로 다시 앉았다. 눈이 시리게 파랗고, 쾌청한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든 채로 잠깐을 울었다.
'이 날이 오긴 오는구나.'
가을 햇살은 나를 향해 하염없이 내리쬐었고, 가을바람은 가만히 살결을 스쳤다. 아빠의 죽음을 미처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동생이 멀리서 다가왔다. 나와 동생은 지난 며칠간 병원 로비에서 머물고 있었고, 그러다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아침에 잠깐 집에 다녀오는 식의 생활을 하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은 시선은 다른 곳에 두고, 조용히 나무라는 듯 말했다.
"갑자기 왜 또 울고 있어."
나는 무거운 입을 떼어 아빠의 죽음을 알렸다.
"아빠 돌아가셨어."
혈육에게 부모의 죽음을 알리는 말이 내 입 밖으로 꺼내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내게는 그렇게 오래 울 시간이 없었다. 세상을 떠난 아빠 곁에 혼자 남아 엄마는 엄마대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었고, 나는 나대로 서둘러 장례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자칫하다가는 장례식장에 빈 호실이 없어 예약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당장 병동으로 뛰쳐 올라가 아빠를 볼 수도, 마음 놓고 슬퍼할 시간도 없다는 것은 부모를 떠나보내는 일이 처음인 자식에게 너무도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 아빠가 죽었는데 특정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예약을 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일들을 급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현실이 어딘지 괴상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여러 번 해봤던 일인 냥 굴고 있는 내 모습도 못지않게 낯설었다.
그날은 엄마의 생일 바로 다음날이었다. 우리 셋은 아마도 평생 엄마의 생일을, 이 눈부신 계절을 슬픔을 삼켜내며 살아내겠구나. 그렇게 우리는 세 가족이 되었고, 나는 아빠를 잃은 딸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