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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Oct 27. 2020

영원히 남는 흉터


내 왼쪽 허벅지에는 볼록 튀어나온 화상 흉터가 하나 있다. 엄지손가락만 한 작지 않은 크기이고 형태는 지구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어떤 나라의 땅덩어리처럼 생겼다. 색깔은 주변 허벅지 살보다 희며 촉감은 두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데, 무릎을 굽혔을 때는 흉터가 팽팽하게 펴져 마치 아기 엉덩이를 만지는 것처럼 매끈매끈하고 무릎을 펴면 흉터에 실주름이 생겨 만지면 자글자글하다. 멀리서 보면 정신 나간 모기가 이 부분에만 왕창 피를 빨아대서 생긴 부어오른 살 같다. 눌러도 아프지 않다.


화상 흉터는 20년 전에 생겼다. 장소는 시골 할머니 댁이었고, 여러 친척이 함께 있었고, 그 많은 식구의 저녁 식사를 막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뭘 그렇게 많이 만들었는지 냄비를 올릴 가스레인지 화구가 부족해 바닥에 버너를 놓고 그 위에 꽤 큰 냄비를 올려 국을 팔팔 끓이고 있었다. 나는 친척 오빠와 깜짝 놀래키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화장실에 있는 언니를 놀래켜주기 위해 사촌 오빠와 살금살금 화장실 문 앞으로 다가갔고, 언니가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왁!!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없이 도망갔다. 휙 뒤를 돌아 도망갈 때 순간적으로 눈앞의 지형지물을 판단할 수 없었던 나는 바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에 발이 걸려 그 위로 넘어졌다. 넘어지고 나서 내가 어땠는지 주변 사람들이 어땠는지 그 몇 초가 기억나지 않는다. 첫 번째로 생각나는 건 어른들이 나를 부엌 싱크대에 쳐넣고 찬물을 틀어 내 왼쪽 다리를 집중 사격하는 상황이었다. 그다음 기억은 무섭게 달리는 아빠 차 뒷좌석에 내가 누워있고 두 다리는 엄마의 무릎 위에 놓여 있었으며 엄마는 내게 '괜찮아, 괜찮아' 말하면서 용암같이 뜨겁고 따가운 내 왼쪽 다리에 연신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던 장면이다. 엄마의 손길로 인해 생긴 바람이 내 허벅지에 닿지 않으면 뜨거웠고 닿으면 차갑도록 시원했다.


그다음 기억은 사방이 새하얀 응급실 안이었다. 나는 하얀 침대 위에 앉아 있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하얀 드럼통 네 통을 가지고 와 그 안에 있던 투명한 액체를 내 왼쪽 허벅지 위로 콸콸 폭포처럼 들이부었다. 소독약이었다. 악을 쓰며 울었다. 지금은 그 고통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를 상기하면 본능적으로 몸이 움찔하고 눈물이 찔끔 나오려 하는 걸 보니 가장 아팠던 순간인 게 틀림없다. 그다음 기억은 왼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집에 돌아온 내 모습이다. 꽤 오래 붕대를 감고 있어서 한동안 화상 상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느 날 화장실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고 있는데 문득 붕대 속 내 화상 상처가 궁금해졌다. 나는 감긴 붕대의 끝 부분을 살짝 밀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려진 붕대 안쪽에 보이는 내 허벅지 살을 두리번거렸다. 몰래 확인한 부분에는 흉측한 상처가 없었다. 드디어 다 낫고 상처가 회복됐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기쁜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머지않아 붕대를 풀고 약을 바를 시간이 왔을 때 흉측한 상처를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됐다. 절망했다. 화장실 안에서의 나는 허벅지를 감싼 붕대가 상처 크기보다 훨씬 더 넓게 내 허벅지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확인한 허벅지 살은 상처 부위로부터 한참 떨어진 부분이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그런 기본적인 판단은 할 수 있었을 텐데. 얼마나 상처가 사라지길 염원했으면 그런 착각을 했을까.


화상 치료가 공식적으로 완료됐고 내 왼쪽 허벅지엔 화상 흉터가 남았다. 그리고 일 년 뒤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서 내 화상 흉터를 깨끗하게 없앨 수 있는지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이 흉터는 수술하더라도 흔적이 남을 거라며 수술을 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일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빠와 나는 별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 이후로 나도 가족 그 누구도 내 화상 상처를 없앨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화상 흉터와 함께 자랐다. 상처는 둔해졌지만 나는 예민해졌다. 무릎 위로 올라가는 짧은 하의는 잘 입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소풍으로 수영장에 가게 됐는데 수영복을 입은 나는 화상 흉터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X자로 허벅지를 교차해가며 희한하게 걸었다. 이 요상하게 걷는 아이는 아마 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리라. 사춘기가 찾아온 중학생 시절엔 무릎 위까지 줄인 교복 치마를 입기 위해 화상 흉터에 반창고를 붙였다. 반창고 하나로는 다 안 가려져 두 개를 붙였다. 무릎 위가 드러나는 옷을 입을 때면 내 온 신경은 화상 흉터에 쏠려있었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고등학생 시절에 문득 깨우쳤다. 화상 흉터는 평생 나와 함께하고 죽을 건데 왜 이렇게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아 하는지 스스로가 피곤하고 한심했다. '이 흉터는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된 거다. 내 손등을 사람들에게 아무 의식 없이, 거리낌 없이 내보이는 것처럼 내 왼쪽 허벅지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래야 하는 거다.' 속으로 되뇌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 뒤로 당당히 내 화상 흉터를 내보이며 다녔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내가 흉터를 감추고 싶어 하고 잔뜩 신경 쓸 때 흉터를 더 잘 발견한다. 오히려 흉터를 내보이고 아무 거리낌 없이 다니면 사람들은 흉터를 보지 못한다. 보더라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심심하거나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나 화상 입었었다.' 하며 흉터를 보여준다. 그 모습은 가끔 '나 이렇게 생긴 반려동물 키워'라며 자랑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영구적인 흉터는 시간이 흘러 나를 이루는 일부분이 된다. 그건 초록 잎이 서늘한 가을이 되면 벌겋게 물드는 모습처럼 자연스러워 무력해 보이기보다는 평온하게 순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구적인 흉터가 내 몸의 일부분이 됐다는 걸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흉터는 더이상 상처의 흔적이 아니다. 내 몸의 또 다른 손이 된다. 귀가 되고 배꼽이 된다. 영원히 남는 흉터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전부 다 오래 불행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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