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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Oct 27. 2020

내 인생 첫 악플



몇 달 전,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게 됐다. 물리학과 교수 김상욱이 죽음에 대해 말하는 동영상이었다. 김상욱 교수는 말했다.


"실제로 우린 죽더라도 인간의 형태가 아니라서 안타까울 수 있지만, 원자가 되어 뿔뿔이 흩어져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던 어떤 나무가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책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원자들은 지구를 떠나서 다른 별로 가서 하늘에 보이는 하나의 별의 일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주가 존재하는 한 우리 몸의 일부는 영원히 함께 존재하는 것이죠."


(*실제로 원자는 우리 몸으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진다. 인간을 필멸이라도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는 불멸이라는 게 과학의 진실이다.)


나는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몇 차례 경험한 후 죽음에 관해 깊게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죽은 영혼은 어디로 가지?"라는 생각이다. 그들을 사랑했던 나에겐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은 영혼이 어디로 갈지 결론 내릴 수가 없으니 내 머릿속에서 그 영혼들은 정착지 없이 헤매며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죽은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기본적인 심상은 슬픔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 김상욱 교수의 말로 인해 나는 말도 못할 큰 위안과 안도,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유튜브에 처음으로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적어 댓글로 달았다. 댓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사랑하는 죽은 이들의 원자는 영원히 소멸되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저와 함께네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저는 더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의 댓글은 이 영상의 인기 댓글이 되었고, 나의 댓글의 대댓글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내 댓글에 대한) 감상과 견해를 달았다. 내 댓글의 대댓글로 달린 어떤 이의 견해에 대대댓글도 달리며 사람들이 서로 갑론을박 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지는 와중 내 마음을 뾰족하게 찌른 한 대댓글이 있었다. 그 대댓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애잔하네 죽고 사라진것을 인정 못하는거 보면 절대 넌 일어설 수 없겠네"


내 인생 첫 악플이었다.(이 정도는 악플도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겐 악플이다) 그래서 내 마음을 뾰족하게 찌른 것이다. 처음 이 댓글을 보고 상처를 받아 '당신은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반박하고 싶었는데, 저런 악플에는 차라리 먹이를 주지 않는 게 맞다는 생각에 반박글을 쓸 생각을 저버렸다. 그리고 오늘, 김상욱 교수와 유지원 타이포그래퍼가 공동으로 쓴 책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고 오랜만에 다시 이 영상을 찾아보았다. 여전히 인기 댓글인 내 댓글 또한 다시 보았고 당연히 그 악플도 보았다. 다시 마주한 그 악플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상처받지도 않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일렁이지도 않았다. 대신 아주 덤덤하게 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을 여기에 적어보려 한다.


"먼저, 저를 애잔하게 생각해 주신 당신의 염려에 감사를 표합니다. 네, 제가 댓글에도 적었듯 저는 죽은 것의 원자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인정 못 한다는'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죽은 이들의 원자는 사라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저와 함께인 것 또한 맞습니다. 이 사실은 당신의 판단과 달리 저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고, 저는 두 발로 힘차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다 틀린 말이었다면 당신은 무척 무안했을 텐데 그렇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무개님, 오늘 저녁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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