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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Oct 27. 2020

편안한 층간소음



나는 보통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자는데, 잠을 자려 침대에 누우면 아래층에서 틀어놓은 TV 소리가 들린다. 새벽 2시 넘어서까지 들릴 때도 잦다. 같이 사는 언니에게 들은 얘기로는 아래층엔 노부부가(노부부만) 산다고 한다. 덧붙이길, 요샌 할머니는 안 보이고 할아버지만 가끔 외출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잠시 마음이 아렸지만, 신파를 좋아하는 나의 추측일 뿐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내가 아는 노인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그리고 편협한 사고일 수 있지만 내가 아는 선에선 그렇다. 왜 아래층 노부부는 새벽까지 TV를 틀어놓는 걸까. 정말 그 시간까지 TV를 보는 열혈시청자인 걸까. 자울자울 화면을 보다 까무룩 잠이 드는 걸까. 그저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틀어놓는 걸까.

올해 1월, 이 집에 이사 온 이래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리는 아래층 TV 소리는 초반엔 나의 숙면을 방해하는 골칫거리였다면, 노부부가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안정감이 느껴지는 ASMR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노부부의 '생존'과 관련된 안도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내가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상상에 빠져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아래층의 TV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날은 미약한 슬픔에 잠겨 잠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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