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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Oct 27. 2020

아빠의 편지



나와 멀리 떨어져 지방에 사는 아빠는 내게 매년 여름이면 옥수수를, 겨울이면 고구마나 밤을 택배로 보낸다. 이번엔 특별 케이스로 아빠가 내게 구황작물이 아닌 신용카드를 보낼 일이 생겼다. 아빠에게 항상 포근하고 푸짐한 물건들만 받아왔는데, 상대적으로 경직되고 빼빼 마른 물건을 받는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아무튼, 빠른 등기로 보내서 하루 만에 도착한 신용카드는 흔하디흔한 흰 규격봉투에 담겨 있었다. 아빠의 손글씨로 보내는이(아빠 이름), 받는이(김지원)가 적혀진 규격봉투를 빤히 보고 있으니, 이 사소한 것이 나중에 내게 소중한 물건이 될 것 같은 어렴풋한 예감이 들었다. 이 규격봉투를 될 수 있으면 오래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봉투를 뜯을 때 아빠의 글씨가 훼손되지 않도록 문구용 칼로 봉투 윗부분을 조심스레 갈랐다. 봉투 안에 신용카드만 덜렁 들어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세로로 곱게 접은 A4용지가 들어 있었고 그 용지 속에 신용카드가 조용히 '포장'되어 있었다. 카드를 꺼내기 위해 A4용지를 펼쳤다. 펼쳐진 A4용지 안쪽 면에는 아빠의 짤막한 편지글이 쓰여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를 받은 사람처럼 얼떨떨해진 나는 신용카드가 방바닥에 툭 떨어진 것도 잊은 채 그 짧은 편지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나에겐 너무도 거대해서 느리게 읽었다.


이전엔 신용카드를 감쌌던 무의미한 포장지였다면 이제는 아빠의 편지가 적혀진 유의미한 편지지가 된 이 A4용지를 원래 모양대로 접어 규격봉투에 다시 넣었다. 처음 규격봉투를 받아들었을 때 내게 소중한 물건이 될 것 같다고 느꼈던 내 예감은 너무너무 정확했다. 아빠의 편지가 든 편지봉투를 책상 서랍 안에 넣으며 이것을 영원히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아빠의 손글씨가 적힌 종이마저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찾아온 게 서글펐다.


(+)편지를 읽고 바로 아빠한테 전화해서 나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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