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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Oct 29. 2020

"저분이 요조인가요?"



2018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출판사 북노마드 부스에서 요조 언니의 사인회가 있었다. 북노마드에서 펴내고 요조 언니가 쓴 책  『오늘도, 무사』 북사인회였다. 요조 언니의 팬인 나는 사인회 시간이 되기 한참도 전에 얼른 달려가 아무도 없는 북노마드 부스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사인회 같은 행사에서 첫 번째로 도착한 게 난생처음이라 속으로 조용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나를 기점으로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겠지. 내가 줄을 만드는 시작점이라는 게 신난다! 기쁜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입가가 옴찔옴찔 거렸다.


그때였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1학년쯤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학생 두 명이 내 뒤로 걸어오더니만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는 나보고 요조 사인회의 줄을 기다리는 거라면 자신들 뒤로 서란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하고 그 남학생들 뒤에 가서 섰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학생들에게는 나의 첫 번째를 양보할 수 있었다. '어른의 배려'를 행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내 앞에 당당히 선 남학생 한 명은 흰 반팔을 입고 있었고 언론 프레스를 목에 걸고 있었다. 다른 한명은 노란 반팔을 입고 있었고 프레스가 목에 없었다. 둘은 학교 친구인 듯 보였다. 흰 반팔 학생은 책 『오늘도, 무사』 세 권을 힘겹게 들고 있었다. 노란 반팔 학생이 흰 반팔 학생에게 말했다. "뭘 그렇게 책을 많이 샀어?" 흰 반팔 학생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중에 나 책방 할거거든. 그래서 두 권은 사인받아서 책방에 진열해 두고, 한 권은 그냥 내가 읽을 거야." 노란 반팔 학생이 오 정말? 하고 감탄하니 흰 반팔 학생은 "응.. 책방 하려면 돈은 좀 많이 들테지만.." 하고 이내 시무룩해졌다.


요조 언니가 사인회 십 분전에 도착했다. 부스 앞엔 사인회를 진행하는 요조 언니를 위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의자에 앉는 요조 언니를 보고 흰 반팔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저분이 요조인가요?" 네.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 반팔 학생은 흰 반팔 학생을 타박했다. "너 얼굴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흰 반팔 학생은 『오늘도, 무사』 책 표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책 표지에 있는 사진이랑 다르게 생겼길래." 표지에는 책을 머리 위에 뒤집어 쓰고 눈을 감고 있는 동그랗고 노란 어떤 캐릭터가 있었다.


사소한 논란이 마무리되자 남학생 둘은 이번엔 요조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에 관해 고민을 시작했다. 흰 반팔 학생은 의연하게 말했다. "어찌 됐든 우리 둘이 함께 못 찍어. 따로따로 찍어야 해." 나는 흰 반팔 학생에게 "제가 찍어줄까요?" 하며 선뜻 말을 건넸다. "아니요. 저는 셀카 찍을 거예요." 거절당했다. 나는 굴하지 않고 다른 말을 건넸다. "그 언론 프레스는 뭐예요?" 흰 반팔 학생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 제가 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요조씨한테 사인을 받고 인터뷰 요청을 하려구요. 아까 저 유시민씨에게도 사인을 받았어요." 기다렸다는 듯 줄줄 나오는 말이 못내 귀여웠다. 친구가 돼서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오늘 저녁에 요조 언니가 게스트로 나오는 토크 콘서트에 간다. 요조 언니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오면 2년 전 그 남학생들이 기억나는지, 기억난다면 셀카는 찍어줬는지 또 인터뷰 요청은 허락해주었는지 물어봐야지.


그리고 아주 나중에 어떤 책방에 들렀다가 요조 언니의 사인이 있는 『오늘도, 무사』 2권을 발견한다면, 흰 반팔 학생이 꿈을 이룬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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