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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Nov 28. 2020

길고양이 세 마리의 수명에 하루를 더 보태주고 왔다.

라이브 모드로 조용히 찍은 길고양이



집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포장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동사무소 앞 화단에 몸집이 작은 길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있는 걸 보았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 온라인 회의 중인(몰랐다) 나리 언니에게 급하게 외쳤다.


"언니 길고양이 밥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해?"

언니는 당황하면서 길고양이용 사료가 있는 서랍장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돼?" 

언니는 구석에 놓아주면 된다고 했다. 

"그냥 땅바닥에?" 

어쩔 수 없단다.


거실 서랍장으로 가 비닐봉지에 길고양이용 사료를 왕창 담고 밖으로 나갔다. 동사무소로 헐레벌떡 뛰어가니 다행히도 고양이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비닐봉지에 손을 넣고 사료를 한 움큼 집어 다가가니 삼색 고양이가 후다닥 화단 밖으로 도망갔다. 회색 고양이는 가만히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화단 바닥에 사료를 살며시 꺼내놓았다. 삼색 고양이는 소인국의 무덤처럼 쌓여있는 사료를 보더니 화단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니 두 마리 모두 사료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혹시나 방해꾼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을 참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있는 화단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여성분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분은 내가 쳐다보고 있는 화단 쪽을 슬쩍 보더니만 가던 길을 멈추고 가방을 부산스럽게 뒤적거렸다.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으려는 게 아닐까. 그럼 찰칵 소리에 애들이 놀랄 텐데.' 속으로 생각하며 그분이 신경 쓰였고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그냥 편히 밥 먹게 놔두지..


그분은 무언가를 꺼내 사료를 먹고 있는 고양이들 앞으로 불쑥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삼색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 화단 밖으로 도망갔다. 이제 그분이 확실히 미웠다. 쭈그려 앉은 뒤통수를 흘겨보았다.


그분은 사료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더니만 갑자기 짠 나타난 닭가슴살을 마구 찢어 사료 위쪽으로 흩뿌려 놓았다. 회색 고양이는 내가 준 사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닭가슴살을 먹기 시작했고, 삼색 고양이도 닭가슴살에 홀린 듯 화단 안으로 들어왔다. 급작스런 반전에 잠시 머릿속이 멍했다. 할 일을 다 마쳤는지 그분은 벌떡 일어나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먹을 닭가슴살을 즉흥적으로 나눠주신 건가? 이 상황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언제 나왔는지 그분은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획 돌려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노래를 듣고 있던 나는 황급히 그 콩나물들을 빼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여성분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도 계속 밥 주시는 분이세요?" 

"아니요. 처음 줘요." 

"(다른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저어 쪽에 애들 급식소 있는 거 아세요?" 

"아니요. 몰랐어요." 

"얘네는 몸집이 작아서 무리에서 밀려났나 봐요. 여기까지 왔네."

"아.." 

"아휴, 얘는 구내염이 심한가 보다. 어쩌나." 

"아.." 

"저는 여기가 친정이라 일주일에 두 번 오는데, 올 때마다 쟤네 먹을 걸 챙겨 와요. 오늘은 안 보이길래 못 주고 가려나 싶었는데 이렇게 딱 있네." 

"아 그러셨구나.."


단답으로 대답하는 나는 절대 화나거나 언짢은 게 아니었다. 그저 훅훅 알게 되는 새로운 정보에 잠시 넋을 놨을 뿐.


그분은 밥을 먹는 고양이들을 지켜보다가 이내 아파트 단지를 나섰다. 그분이 자리를 뜬 뒤, 회색 고양이를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그 아이는 먹는 게 불편해 보였다. 아까 사료를 주다가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했을 때 입가가 유난히 지저분하고 털이 이리저리 엉켜있는 걸 보았다. 눈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구내염 때문이구나. 마음이 쓰렸다.


고양이들이 사료를 다 먹어갈 때쯤,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나온 내 발가락이 춥다는 게 느껴졌다. 조심스레 화단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겨우 몇 걸음 걸었을까. 아파트 인도에서 또 다른 삼색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고양이는 수풀 사이로 훌쩍 도망갔다. 남은 사료를 꺼내 쥐고 수풀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고양이는 저를 따라 들어온 나를 보더니 저 멀리 후다닥 도망갔다. 나는 벽돌 위에 신문지 쪼가리를 깔고(다행히 주변에 있었다) 보란 듯이 그 위로 사료를 후두둑 뿌렸다.


사료 소리를 들은 삼색 고양이는 도망가다 말고 뒤를 돌아 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얼른 수풀 밖을 빠져나와  근처에 서서 어떤 소리가 들리길 귀 기울였다. 작은 발이 바삭바삭 마른 나뭇잎을 밝고 사료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조용해졌다. 슬쩍 모가지를 빼고 수풀을 살펴보니 삼색 고양이가 사료를 먹고 있었다. 옳지 잘한다. 속으로 되뇌곤 그 아이가 다 먹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 시간이 삼 분가량 흘렀을까. 다시 모가지를 길게 빼서 그 아이가 사료를 다 먹고 자리를 떠난 걸 확인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상했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에 개입한 느낌, 그 느낌은 나를 붕 뜨게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길고양이 세 마리의 수명에 하루를 더 보태주고 왔다.


발가락은 꽁꽁 얼었지만, 마음에는 따뜻한 온기가 불어왔다.


집에 오니 거실엔 고양이 장난감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고 고리와 달리가 나른하게 퍼져있었다. 아이들은 오후의 따스한 햇볕을 쬐며 자울자울 졸고 있었다. 곧 영하가 될까 말까 한 기온에 있던 길고양이들과 난방을 틀어놓고 햇빛을 받으며 늘어져 있는 우리 집 고양이들. 마음이 가려웠다.


고리야 달리야. 그거 알아? 밖은 춥다. 하지만 나는 밖에서 너희 친구들에게 온기를 나눠 받고 왔어. 

앞으로 집을 나설 때 사료가 든 비닐봉지를 챙기려 해. 아, 닭가슴살이 더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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