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박연준의 글은
닮고 싶거나 빼앗고 싶은 문체를 가진 작가들의 책을 필사한다. 어떤 책은 기계적으로 써내려가는 반면 어떤 책은 입으로 한 단어 한 단어 따라 읽으며 쓴다. 나에겐 박연준 시인의 책이 그렇다. 박연준 시인의 글을 천천히 따라 읽으며 필사하면 '글을 먹고 있다.' 라는 느낌을 받는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글이 먹음직스럽다. 때로는 퐁상퐁상한 솜사탕 같고 때로는 달큼하고 묵직한 곶감 같다. 입에 왕 넣어 우물거리고 싶다. 어떤 글은 혀에 사르르 녹는 반면 어떤 글은 질겅질겅 오래 씹겠지. 나에게 있어 박연준 시인의 글을 필사하는 건 문체를 닮고 싶어서, 빼앗고 싶어서 와는 차원이 다른 욕망이다. 그녀의 글을 먹어 내 몸으로 소화하고 싶다.
박연준 시인의 글을 따라 읽으며 필사하다보면 서서히 몰입하게 된다. 그때 나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다른 형태가 된다. 내가 필사하고 있는 글을 쓸 당시의 박연준 시인의 방, 그녀 주변을 부유하는 공기 입자가 된다. 혹은 그녀가 글을 쓸 때 활발하게 활동하는 뇌세포 중 하나가 된다. 이 글을 쓸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때의 온도는 어땠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글의 마침표를 찍었는지 알게 된다. 엄연히 말하면 가정이고 추측이지만 말이다.
작가의 글을 먹고, 작가의 일부가 되는 느낌. 이 느낌은 입으로 직접 따라 말하며 필사할 때만이 체험할 수 있다. 가만히 필사하는 것 또한 작가의 문체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이건 그저 같은 공간에 작가와 내가 개별의 존재로서 나란히 서 있는 모습밖에 못 된다. 작가와 일체화된 느낌, 그래서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가늠할 수 있는 그런 뭔지 모를 아련한 느낌을 받으려면. 입으로 따라 읽으며 필사하는 일.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