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버겁습니다.

by 김퍼피

소설을 잘 읽지 않습니다. '안' 읽는다기보다는, '못' 읽는 것에 가깝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힘겹고 버겁습니다. 스토리에 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고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소설은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이 저의 장기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감 능력을 잘 발휘하는 거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영상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사람에게마저 이입을 잘해 메디컬 드라마는 보지 못합니다. 메스로 피부를 째는 장면을 보면 실제 제 겉가죽이 찢기는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거든요.


그렇지만 흰 종이에 검은 활자로 눈코입이 그려진 사람에게만큼은 공감하고 이입할 수 없습니다. 소설을 읽을 땐, 오히려 소설 속 인물이 빨간 심장을 가지고 있는 실재이고 제가 안개처럼 뿌연 허구 같습니다. 역으로 그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이 저란 빳빳한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네, 소설에서 제가 느끼는 심상은 부정적이라면 부정적이지요. 이전엔 이 상황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딱히 없어 '나는 왜 소설을 못 읽을까?' 하며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서 이 구절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소설은 한 편에 한 번씩 삶을 '살게' 한다. 한 권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한번 더 살아본 기분이 든다.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p.253



이 구절을 읽자마자 어려운 수학 문제를 단 한 개의 공식으로 풀어낸 기분이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저는 주인공의 삶을 살았던 게 맞았고, 여기서 문제는 제가 타인의 삶을 살아낼 힘(근육)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마음이 힘겹고 버거웠던 겁니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면, 소설을 읽을 때 잠시 내 삶을 내려놓고 책 속 주인공의 삶을 살았더라면 한결 읽기 쉽고 마음이 가벼웠을 텐데, 저는 저의 삶도 주인공의 삶도 필사적으로 꼭 잡고 무엇 하나 놓지 못했던 거죠. 마치 철봉 오래 매달리기 수행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학생처럼요.


어렸을 때는 소설을 곧잘 읽었습니다. 그 시절을 복기해보면 소설을 읽을 때, 제 존재는 말끔히 지우고 주인공에 이입해서 신나게 스토리 라인을 내달렸습니다. 그렇게 온전히 주인공의 삶을 살았는데, 그게 전혀 힘들지 않고 흥미진진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을까요.


내 삶을 살아내기에도 벅찬데 존재하지도 않는 남의 삶까지 살아야 한다는 팍팍한 생각 때문일까요. 나와는 다른 존재의 입체적인 삶을 살다가 책을 덮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밋밋함과 허무함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둘 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설을 읽지 못할까요? 사실, 이제는 극복해서 다시 소설을 잘 읽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에 좋은 문장을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소설에는 산문집, 시집, 전문 서적 등에서 습득할 수 없는 다른 결의 문장이 분명히 있습니다. 아름다워서 빛나고, 더럽고 흉해도 빛나는 것들입니다. 제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제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유독 소설을 탐독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그들의 문장은 그들이 읽은 소설 속에서 태어났을 겁니다.


소설을 읽는 것이 글을 잘 쓰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 건 알지만, 그중에 하나인 건 맞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조심스레 소설을 읽어나가보려 합니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처럼요. 아이가 위태롭게 걷다가 넘어지려 하면 어른이 도와주듯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소설책이 있다면 제게 추천해주세요. 단, 내용이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막 유아기에 들어섰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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