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by 김퍼피

연예 뉴스에는 종종 학교 폭력과 관련한 기사가 올라오곤 합니다. 대부분 '어떤 한 연예인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다, 왕따의 주도자였다.'는 내용이지요. 기사 밑으로는 해당 연예인을 비방하는 댓글들이 수두룩하게 달리고 머지않아 그 연예인은 가해자였음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게시합니다. 이후에는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고 화해했다며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려는 기사가 뜨기도 합니다. 일부 연예인은 피해자의 말이 억측이라고 반박하며 소송을 걸겠다 하지만 학교 폭력으로 화두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이미 대중들은 그를 이전처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늙은 노점상에게 거스름돈을 원래 금액보다 더 받고 돌아온 사람마냥 마음 한 편이 불편하면서 어떤 가책을 느낍니다. '연예인 학교 폭력' 사건은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수면 위로 떠오르니, 저의 이런 마음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고개를 내밀게 되기 마련입니다. 제가 이런 양상을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학교 폭력 기사만 보면 학창시절 저에게 있었던 두 가지 일이 유화 그림처럼 선명하게 회상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반에서 단짝이라 부를 만큼 친한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게 외롭거나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등하교를 하고 쉬는 시간에는 책을 봤습니다. 저를 괴롭히거나 멀리하는 아이들이 없었기에 왕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두루두루 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없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이었습니다.


머리와 마음이 조금 더 자란 3학년이 되고 나서야 단짝 친구가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친구가 없는 결핍감을 느끼며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을 때, 같은 반 여자아이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 아이는 저와 오래전부터 친했던 양 처음부터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고 그것에 호감을 느껴 그 아이와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인생 첫 단짝 친구가 생겼습니다. 나의 친구 '오'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크고 깊었습니다. 곱슬머리였고 염색을 했는지 머리카락의 색깔은 붉은 갈색이었습니다. 오는 쾌활하고 재미난 성격이었습니다. 활동적이기까지 해서 방과 후에는 저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습니다. 주로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작고 옹졸한 놀이터 아니면 잡초들이 무성한 황량한 공터였지만, 집과 학교 인근에서만 놀던 저에게는 신비롭고 가슴 뛰는 곳들이었습니다. 오와 놀면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의 성격은 오를 따라 활발해지고 목소리도 커지면서 말수도 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점심을 먹고, 음악실을 가고, 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격이 조금씩 외향적으로 변한 탓에 오 외에 다른 친구들과도 친분을 쌓게 됐습니다. 그러나 긴밀한 시간을 보내는 건 오뿐이었습니다.


4학년이 됐습니다. 새 학기 첫날,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서자 오가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담임 선생님이 금방 오시는 바람에 오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빈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주변에서 반 아이들이 조용히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고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가자 숙덕이던 소리는 교실에 있는 모두가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오에게서 악취가 나서 더럽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오에게선 특유의 시큼하고 고릿한 냄새가 났습니다. 오를 처음 본 일 년 전, 저도 그 냄새를 맡았지만 '악취'라고 여기지 않고 '오만의 냄새'로 받아들였습니다. 엄마에겐 엄마만의 냄새가, 할머니에겐 할머니만의 냄새가 나듯이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이제 막 사춘기가 온 아이들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쟤랑 가까이 있지마 냄새나. 쟤 짝꿍 불쌍하다. 쟤네 집 판잣집이래. 오를 욕하는 소리와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오에게 가서 반갑게 인사하려던 저는 꿈쩍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 이름 모를 두려움이 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꼭 붙들었습니다. 오는 얼음처럼 굳은 저에게 다가오지도, 시선을 주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이 책상만 보며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오는 4학년 1학기 첫날, 우리 반 왕따가 됐습니다. 그런 오에게 차마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도 왕따가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운 마음에 잠식당한 저는 본능처럼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오에게 다가가거나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종종 주변에서 오를 기혐하는 말들이 들려올 때면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을 뿐, 덩달아 같이 욕하지도 오를 변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말없이 보기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5학년, 6학년, 학년이 올라가도 오는 변함없이 왕따였습니다. 저 역시도 변함없이 보기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를 유지하며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학교의 교훈인 듯 대부분 아이들이 야생동물처럼 길길이 날뛰던 남녀공학 중학교 생활을 무사히 끝내고, 상대적으로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는 여자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원래 여고가 그런 건지 저희 반만 그랬던 건지는 알 수는 없지만, 저희 반은 모든 아이들이 고루고루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물론 각자마다 같이 다니는 무리, 단짝 친구가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잘 섞어 놀았습니다. -반마다 한 명씩 꼭 있는- 반항적이면서도 목소리가 커서 반 분위기를 나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아이도 학급의 평화를 쉽게 깨지 않았습니다.


그중 저와 단짝 친구는 아니지만 단짝 친구 그 다음으로 친했던 '박'이 있었습니다. 박은 학급에서 가장 키가 작았고 쌍꺼풀이 진했습니다. 목소리는 조금만 커져도 까랑까랑했고 유머가 있었는데 좀 시시했습니다. 저는 종종 박과 대화했고 점심을 먹었고 노래방도 갔습니다. 박과의 소소하지만 재미난 추억들을 조금씩 쌓아가며 1학기를 보냈습니다.


2학기가 된 어느 날, 반항적이면서 목소리가 커서 반 분위기를 나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아이 '김'이 박에게 장난을 쳤습니다. 박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짜증을 냈는데 그 장면이 누가 봐도 귀엽고 우스워서 주변 아이들이 깔깔 웃었습니다. 저도 웃었고 박도 싫지 않은 듯 따라 웃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김이 박에게 장난을 치는 횟수는 점점 잦아졌고 강도마저 세졌습니다. 웃으며 장난을 받아줬던 박도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고 진심으로 싫어하는 짜증을 냈습니다. 박이 자신의 장난을 받아주지 않고 정색을 하며 뿌리치자 김은 박을 싫어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이 박을 싫어하자 김의 무리도 박을 싫어하게 됐고 그 감정은 반 전체로 퍼져갔습니다. 누군가가 박과 잠시라도 함께 있으면 김은 "너 왜 박이랑 노냐?" 하며 으르댔고 그런 일이 반복되니 반 아이들은 박에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박은 혼자가 됐습니다. 박은 혼자가 되고 나서 김이 자신을 괴롭힐 때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반응이 재미없었는지 김은 더는 박을 괴롭히지 않았지만, 박은 여전히 혼자였습니다. 이전의 생기 넘쳤던 생활로 되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박이 웃으며 김의 장난을 받아칠 때 따라 웃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웃음기가 사라지고 분위기가 차갑게 뒤바뀌어 김이 반 아이들을 박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압력을 줄 때, 그 압력에 납작하게 눌려버린 사람 중 한 명이 됐습니다. 혼자가 된 박을 말없이 보기만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김이 더이상 박을 괴롭히지 않게 됐을 때도 여전히 보기만 하는 사람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압니다. 초등학교 4학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전 단순히 '보는 사람'이 아닌 학교 폭력의 방관자였다는 걸요. 그 당시엔 자신이 방관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몸은 방관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머리로는 '나는 그냥 보기만 하는 사람이야'하며 결백하고 순진한 단어로 자신을 가책으로부터 보호했는지도 모릅니다. 뭐가 됐든 방관자로 두 번이나 살았다는 건 명명백백합니다.


가해자는 죄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무엇에 관해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쉽게 알 수 있죠. 사람들은 마땅한 근거를 가지고 가해자를 비난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도 그 비난을 받아들이며 뉘우칠 수 있습니다. 평생 혹은 그 언저리의 기간 동안 피해자에게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을 느끼며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관자는 다릅니다. 누구는 방관자가 죄가 있다고 말하고 누구는 죄를 부여하기엔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방관자는 죄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모든 게 명확하지 않은 방관자는 혼란스럽습니다. 그 혼란은 괴로움을 낳습니다. 방관자는 죄인과 죄인이 아님, 이 두 개의 높은 벽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살아야 합니다. 어느 날은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지켜만 봤다는 죄책감이 사무치게 들고, 어느 날은 가해자의 힘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며 자기 합리화로 죄책감을 밀어내는 변덕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겪어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뚜렷하게 죄가 있는 가해자보다 변화불측하고 어지러운 방관자로 사는 일이 더 무거운 짐을 지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무거운 짐을 두 개나 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오와 박이 '넌 죄가 있어' 또는 '넌 죄가 없어' 둘 중의 하나로 명확한 답을 내려준다면 저는 짐을 덜거나 내려놓을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따금 오와 박을 수소문해 연락해볼까? 만나서 내게 그 답을 내려달라고 해볼까? 생각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욕지거리를 내던집니다. 그리곤 오와 박을 만나선 안 된다고 뇌까립니다. 오와 박은 제가 진 짐의 무게보다 더 무겁고 힘겨운 삶을 살아냈을 텐데, 과거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아픔으로 남아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을 지도 모를 텐데, 겨우 짐 두 개 짊어진 나 하나 편해지자고 그들을 찾아가 답을 얻으려는 생각이 그 얼마나 이기적이고도 파렴치합니까.


아직 저는 그 답을 모른 채로 더 오래, 훨씬 더 오래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PS. 이 글은 요조의 노래 '보는 사람'을 들으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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