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by 김퍼피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에서 10분가량 떨어진 무인 세탁방에 이불빨래를 하러 갔습니다. 세탁방에 가는 길, 마음속으로 요조의 노래 '이불빨래'를 흥얼거립니다. 오오오오 오늘은 아아아아 아침부터 이이이 이불을 빨아요. 노래가 나올 정도로 한 달에 한 번 있는 이 날을 저는 사랑합니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세탁기와 건조기들, 그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빨랫감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과 건조기에서 막 꺼낸 이불의 따뜻한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이 못내 행복하거든요. 제 몸이 다 청결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덤입니다. 기실 깨끗해지는 건 정신없이 돌아가는 이불들이지만요.


건조기에서 막 나온 따끈한 이불들을 착착 접어 낡아빠진 여행용 가방에 넣고 그것을 달달달 끌며 집으로 향합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커버가 벗겨져 옹졸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베개와 매트리스, 속이불에게 옷을 차근차근 입혀줍니다. 흰 커버를 입힌 매트리스를 주름진 곳 없게 착착 누르고 그 위에 전기장판과 얇은 이불을 순서대로 올립니다. 두꺼운 이불을 허공에 펄럭인 후 침대 위로 딱 알맞게 안착시키는 것을 끝으로 이불빨래의 시간은 막을 내립니다.


무척 큰일을 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아직도 오전 11시입니다. 혼곤한 잠에서 막 깨어난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방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전의 여린 햇살과 침대에서 잔잔하게 풍겨오는 건조기 스팀 냄새. 문득, 오늘은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는 당신을 생각하며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당신은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이 맞습니다. 저는 여태 당신에게 에세이로 편지를 써왔지만, 마지막 편지는 당신에게 직접 말을 걸어보려 합니다. 조금 떨리네요.


당신은 취향이 퍽 유별납니다. 등단한 작가도, 온라인에서 유명한 글쟁이도 아닌 한낱 평범한 저의 글을 만 이천 원이나 지불해서 읽고 있지 않습니까. 전 당신에게 보낼 에세이를 쓸 때마다 허공에다 이유를 묻습니다. 왜 돈을 내가면서까지 저의 글을 읽고 있는 겁니까. 자기애가 가득한 날엔 그 이유가 '당신은 작가로서 미래가 유망해 보이는 한 아이에게 투자하는 예리한 투자자라서' 였고,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지는 날엔 '당신은 SNS에 제발 좀 구독해달라고 홍보해대는 아이가 가여워 자선한 봉사자라서'였습니다. 사실 당신은 이 두 가지 이유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네 글이 좋아서'가 이유일 수 있겠지요. 여태껏 저는 누군가가 제 글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정말인가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스스로 글쓰기 실력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상대의 말이 진짜가 아니라고 의심했던 거지요. 허나 훗날 이 마지막 편지까지 읽은 당신이 '네 글이 좋아서 구독을 했다'고 말해준다면 저는 용기 내어 감사합니다. 하고 당신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번의 유료 에세이를 읽고 나서 그런 말을 제게 해준다는 건 진심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말일 테니까요.


당신은 성격이 참 과묵합니다. 세 번의 에세이를 받는 동안 단 한 번도 저에게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 환불해달라. 라는 말을 건네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편지가 우편함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봉투를 뜯어 읽는 그저 묵묵하고 조용한 독자였지요. 전 당신의 침묵에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용기는 온전히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쓰고 싶은 글을 쓴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글은 쓰면 쓸수록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좋아해줄까? 끝까지 읽어줄까? 사람들에게 흥미롭고 유익한 주제인가?' 하며 한없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쓰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을 끌 만한, 자극적인, 억지 교훈이 담긴, 네 글도 내 글도 아닌 속이 거북한 글을 쓰게 되지요. 다행히도 당신은 과묵했고 그래서인지 아무런 말이 없어 되려 저는 그 위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재미있어요 혹은 재미없어요 라고 제게 말을 걸어왔다면 저는 당신의 입맛에만 집착하며 제 글의 고유한 맛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당신의 침묵을 '무슨 글이 오든 난 잘 읽고 있어요.' 라는 긍정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는데, 제가 생각한 게 맞는 거겠죠?


세 번씩이나 손으로 썼기에 -곧 네 번이 될 테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집 주소. 전 처음 당신의 이름과 집 주소를 펜으로 적던 기분을 기억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와 새로운 반으로 등교한 첫날, 중학생이 됐다는 설렘과 아직은 서로가 낯설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적막함이 뒤섞인 교실에 놓인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적어갈수록 점심시간에 의자를 뒤로 돌려 마주 보고 밥을 먹는 친구가 생긴 친숙하고 안정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야 당신의 이름 석 자와 집 주소의 글자들이 익숙해졌는데, 편안해졌는데, 앞으로 한 번만 더 쓰면 아마 다시는 쓸 일이 없는 글자가 돼버렸습니다. 얇은 크라프트지 스티커 위에 네 번째로 당신의 이름과 우편번호, 집 주소를 쓰는 날에는 어떤 기분일까요. 중학교 졸업식 날,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받아 더 이상은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없는 친구를 깊게 포옹하는 애틋한 기분이 들까요? 뭐가 됐든 마지막 우편봉투엔 삐뚤빼뚤 못생겼던 제 글씨체를 최대한 바르게 교정해서 쓰겠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그 글자는 당신을 배웅하는 저의 장구한 포옹입니다.


이제 잠시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UX(User Experience)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UX 디자이너로 인턴도 했었죠.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아투와 사업을 병행하며 UX 디자이너 직군으로 취업을 준비했던 취업준비생이었습니다. 지금은 취업에 대한 생각을 지운 채 글만 쓰고 있지만, 아직 UX 디자인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UX 디자인을 놓지 못하는 건 그 학문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UX 디자인은 사용자가 서비스/제품을 사용할 때 만족스러운 경험(감정, 기억)을 제공하는 UI를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제가 UX 디자인을 좋아했던 이유가 바로 '사람들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학문을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용했습니다. 여태껏 에세이를 출력해온 당신이 만지고 있는 이 종이는 당신이 글을 읽을 때 눈이 피로하지 않고 손으로 넘기기에도 딱 좋은 무게감이 들도록 80g 미색 모조지를 사용했습니다. 당신이 낱장의 종이를 넘길 때 불편하지 않도록 클립을 왼쪽 위 모퉁이 부분에다가 각도를 비스듬하게 기울여 꼽았습니다. 에세이에 사용된 폰트의 종류, 크기, 행간 넓이, 완전한 블랙이 아닌 컬러 모두 당신이 저의 글을 읽는 동안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도록 세심하게 선택한 것들입니다. 이유 없이 만들어진 요소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매끈한 모조지를 사용하지 않고 질감이 느껴지는 탄트지 편지봉투를 사용한 이유도 당신이 에세이 뭉치를 본격적으로 꺼내기 전 설레는 기분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제 에세이를 우편함에서 꺼내고 봉투를 열고 글을 읽고 어딘가에 보관해두는 이 일련의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당신의 만족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장치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걸요. 그래도 저는 괜찮습니다. 당신은 분명 이 서비스만이 줄 수 있는 '아투와'만의 경험을 느꼈을 거니까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당신과 저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써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편지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많지만 담백한 끝맺음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말을 응축하고 응축하여 전하겠습니다.


나의 첫 구독자였던 당신, 설익은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들큼한 저의 글을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 이토록 선한 당신의 이름을 꽤 오래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아주 나중에 제가 아주 잘 익은 사람이 되어 맛깔스러운 글을 쓰는 날이 온다면, 당신을 위한 글을 하나 쓰겠습니다. 나의 첫 번째 구독자인 당신이라면 그 글을 결국엔 발견해내어 읽게 될 거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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