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렸다는 걸 인지한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고 얼마간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그리 오래 쓰지도 않았을뿐더러 에어팟 가격은 적은 금액이 아니었으니까요. 에어팟을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카페에 가서 직원분에게 분실물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앉았던 자리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입고 있었던 옷의 주머니나 가방 속이요? 진즉 찾아보았죠.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어폰을 매시간 귀에 달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훗날 청력 손실이 걱정될 정도로요. 치약, 휴지처럼 기초 생활필수품인 이어폰 없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어 그다음 날 바로 새로운 에어팟을 샀습니다. 예정에 없던 큰 지출에 속이 쓰렸지만 새 에어팟을 손에 그러쥐자 쓰린 속을 완화하고도 남을 만큼의 안정감이 스며들었습니다.
새 에어팟을 장만하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방바닥을 쓸고 닦으려고 바닥에 있던 작은 물건들은 책상 위로 올려두고 큰 물건들은 방 밖으로 빼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상 아래 있던 발 받침대를 치우려고 들어 올렸을 때, 하얗고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입에서 걸쭉한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잃어버린 에어팟이 거기 있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자신에 대한 분노 때문에요. 예전 에어팟을 손에 꼭 쥐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 '이걸 어떻게 할까. 아니 저 새 에어팟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부글거리는 마음으로 고민하다가 마침 같이 사는 언니가 에어팟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네, 결국엔 언니에게 예전 에어팟을 합리적인 중고 가격으로 팔았습니다. 에어팟 실종 사건은 완전히 슬픈 결말은 아니게 됐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체크카드를 한 달에 한 번꼴로 잃어버려 재발급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친구는 너 카드사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거 아니냐며 저를 얄궂게 놀려댔습니다. 저는 그 놀림에 "그래도 뭐 어쩔 거야. 자기네(카드사)들이 무료로 재발급해 주는 제도를 만들었잖아. 나는 그 제도를 백분 활용하는 고객인 거고. 아무튼 재발급을 받았으니 됐어"라고 말하며 심각한 자기방어를 했습니다.
지인이 큰맘 먹고 사준 비싼 지갑을 잃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제 수중의 돈으로는 쉽게 살 수 없는 준명품 브랜드였는데 선물 받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한 건 했지요. 지인에게 미안함 반, 비싼 지갑을 다시 들고 다닐 수 없다는 속물적인 안타까움 반으로 일주일 정도는 혼자서 끙끙 앓았습니다. 결국은 지인에게 사실대로 말하며 고개가 땅에 닿을 듯 사죄를 했고, 잃어버린 지갑의 반의반 가격도 안 되는 이전 지갑을 다시 찾아 들었습니다. 이미 눈이 높아져 이전 지갑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일단 지폐와 카드를 넣고 다닐 수 있는 '지갑이라 불리는 물체'가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 위로를 했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물건이 저를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도 일부러요. 더 나은(더 돈이 많거나 더 잘생기거나 더 성격이 좋거나 더 칠칠맞지 않은)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죠.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을 잃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사람을 잃어버렸다 함은 관계가 아주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사람은 물건만큼 자주 잃어버리지는 않지만, 한 번 잃어버리면 새로 산 에어팟을 바로 그다음 날 잃어버리는 심정보다 훨씬 더 처참합니다. 제가 사람을 잃어버렸던 단적인 사건으로는 '십년지기 친구와의 절연'과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있습니다.
십년지기 친구와 절연을 하게 된 계기는 사소한 이유로 인한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친구도 저도 힘들고 예민하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땐 그 사소한 이유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결국 둘 다 서로를 다시는 보지 않는 선택을 하고 말았죠. 절연한 초반에는 친구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다가 갈수록 아닌가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으로 변모했고 지금은 잘못이 있다면 둘 다에게 있는 거고, 사실은 둘 다 잘못했다기보다는 서로를 헤아리는 것에 미숙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건이었습니다. 뇌출혈로 돌아가셨기에 엄마의 자발적인 선택도 아니었고요. 가장 소중한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어버리게 되면 한동안은 그의 부재를 느낄 수 없습니다.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집에 엄마가 있을 것만 같고,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엄마도 안방 침대에서 자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 시기는 슬픔보다 얼떨떨함이 더 큰데, 부재를 받아들이게 되는 시기가 오면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이안류에 휩쓸리게 됩니다.
잃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린 물건처럼 똑같은 것을 다시 구하거나 대체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친구 같은 경우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 친구의 부재를 메꿔줄 새로운 사람을 사귄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린 친구의 고유한 성질, 그러니까 그 아이의 생각이나 마음씨나 말투는 영영 되찾지 못합니다. 그건 대체가 아닌 단지 새로운 사람을 얻는 것일 뿐이지요.
잃어버린 물건은 땅으로 떨어진다면 잃어버린 사람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하늘로 올라가 버립니다. 하늘 위 구름은 숱한 이들이 잃어버린 사람들의 초상, 구름에서 내리는 비는 그들에 대한 그리움 혹은 원망입니다. 비에 젖으면 멀쩡했던 마음이 상실감으로 축축이 아려오니까 우산을 쓰는 건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비는 일기예보에 없었던 예상치 못 한 비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잃어버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우린 모두 하늘에 가 구름으로 삽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비를 내려 나를 잃어버린 누군가에게 나의 부재를 인식하게 하지요. 이렇게 인식된 부재는 존재보다 강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비가 오면 흙 내음, 풀 내음이 진득해지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사람을 잃어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 상실감에 익숙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매번 슬퍼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다음 상실을 맞이하기 위한 올바른 자세이자 예의입니다. 익숙해지는 순간, 슬픔이 무뎌지는 순간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보다 더 크고 소중한 것, 나 자신의 사람됨을 한 조각씩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