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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Oct 27. 2020

키웠던 강아지가 있었다



1.

키웠던 강아지가 있었다. 이름은 김찌르고 15년을 살았다. 2016년 6월 30일 새벽 4시, 찌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찌르는 떠나기 전에 많이 아팠다. 까맣고 동그란 눈은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고, 청각도 그리 좋지 못했다. 심장병과 신부전(신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상태다)이 있었고, 폐부종(폐에 물이 고여 산소교환이 어려워지는 병이다. 심장병에 의해 생긴 병이다. 심한 기침과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인다)과 췌장염을 앓았다.

2.

2015년 9월, 동물병원 검사 결과로 찌르의 여러 병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시에 찌르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심장이 비대해지고. 심장에서 잡음이 들리고. 신장이 더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한 손으로 셀 수 없는 찌르의 병들 가운데, 시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다. 언제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던 걸까.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세상이 뭉개지고 어두워지는 게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 혼자.

동물병원에서 검진결과를 듣고 찌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은 정오의 햇살로 밝고 눈부셨다. 나는 집에 온 것이 마냥 좋은 찌르를 앞에 두고 울었다. 일요일 정오의 햇빛을 나는 볼 수 있고 너는 볼 수 없다. 불공평했다. 편두통이 일 때까지 울었다.

3.

하루에 두 번, 찌르는 심장병약을 먹었다. 심장병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매일 먹어야 하는 쓰디쓴 가루약이다. 가루약 그 자체로는 절대로 먹지 않았기에 소량의 물에 가루약을 풀어 되직하게 만든 후, 찌르를 안아 들고, 주사기로 입안에 강제 투여해야 했다. 찌르를 정자세로 안으면 발버둥을 치니 찌르의 배가 천장을 향하도록 뒤집어 안았다. 약을 먹이려 하면 입을 꾹 다물고 벌리지를 않으니 주사기 끝으로 입 틈새를 억지로 비집었다.

아침 여덟 시에 한 번, 저녁 여덟 시에 한 번 찌르는 내 품에서 무력하게 쓴 약을 넘겼다. 찌르의 입 언저리에는 항상 말라붙은 약이 묻어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매일 생기는 흔적이었다.

4.

폐부종이 있던 찌르는 심하게 흥분하면 기절하곤 했다. 찌르가 심하게 흥분할 때는 내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시점이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찌르는 너무 반가워 흥분해서 뛰어다니다가 픽픽 쓰러진다. 이렇게 찌르가 기절하는 일이 빈번해지니, 나중에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내가 먼저 찌르를 꼭 끌어안고 흥분하지 않도록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었다. 내 품 안에서 찌르는 조용히 흥분하고 고요하게 기절했다.

기절하면 찌르의 호흡은 단번에 멈추고, 붉었던 혀가 보랏빛으로 변한다. 항문에서는 소량의 대변이 나온다. 찌르의 작은 몸은 힘없이 축 늘어진다. 대략 삼십 초 정도 지나면 찌르는 갑작스레 숨을 컥컥 몰아쉬며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폐에 물이 찬 상태라 곧바로 찌르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찌르는 전자레인지만 한 크기의 산소처치 방에서 하루 동안 입원하며 폐에 물을 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었던 일이다.

5.

찌르는 집처럼 드나들던 동물병원 응급실에서 숨을 멈췄다. 떠나는 순간까지 고통에 허덕이다 갔다. 원장선생님은 찌르의 눈을 감겨준 뒤 내 품에 건네주었다. 나는 찌르를 항상 담고 다녔던 슬링백 안으로 소중하게 옮겼다.

병원에서 나와 집 앞 중랑천으로 향했다. 우리가 산책할 때마다 가던 곳이다. 시간은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고 보슬비가 내렸다. 찌르의 병세가 심해진 뒤로는 이곳에 함께 가지 못했다.

나는 평소 찌르와 산책하던 시간보다 조금 더 오래 걸었다. 그리고 슬링백 안으로 손을 넣어 편히 잠든 찌르의 등을 쓰다듬었다.

6.

괜찮아 이제.

괜찮아 영원히.

-

이소라 7집 Track 4를 듣고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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