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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맑음 Dec 17. 2020

초고에도 닿지않은

세상의 모든 완벽주의에게

  

 10월 중순에 우연히 건너 알게 된 지인이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았다. 내일 당장 글짓기 워크숍을 하는 데 참가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할 것도 없어 참가한다고 했고, 작가 한 분의 피드백 하에 여러 사람이 글짓기를 한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참가하겠다고 한 이 말이, 이렇게 큰 변화를 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생은 참, 모르는 것 같다.      

 첫날 공간에 도착해, 각자 읽었던 책의 한 문장을 공유했다. 자기가 꽂혔던 문장을 이야기하며 왜 이게 꽂혔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본인에 대한 소개가 됐다. 저는 '무슨 일을 하는 누구'라는 이야기 보다, 저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인지를 설명했다. 집에 돌아가 숙제로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을 썼다. 오랜만에 써보는 글이었다. 주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캐릭터로 만들고,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길어졌다. 내가 이때까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참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완성되고 내 이야기가 아니기에 그들에게 보여주고 혹시 글로 쓰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나를 좀 더 출연시켜줘! 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더 써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름 뿌듯했다.      

 글을 제출하고 두 번째 방문이었다. 여전히 따뜻한 공간. 다들 낯은 가리지만 이야기를 하면 서로 귀를 쫑긋하고 쳐다봐준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공간의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쓰다듬어 주고, 사진을 찍는다. 나는 사람들이 고양이에 시선이 따라가는 걸 보는 게 더 재밌다. 무장 해제를 한 표정들이 나타난다. 그걸 지켜보면 재밌고, 사람 냄새가 난다. 기분 좋게 자료집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내 글이 나왔다. 당황스러웠다. 쭉 쭉 뒤로 넘기니 다른 사람들의 글도 있었다. 두 번째로 당황스러웠고, 그 이유는 내 글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혼자 거의 논문을 썼다. 마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같이 느껴져 부끄러웠다. 

 작가님은 글을 잘 쓰려면 타인에게 보여줘야 완성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미리 말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작가님은 사람들의 글을 공유했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주며 피드백 해주셨다. 그날의 주제는 초고였다. 초고가 뭔지도 몰랐던 나는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초고에서는 감정을 쏟아내고, 가장 뜨거운 글을 쓰면 된다. 가장 만지기 힘든 무언가를, 나만 쓸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계속 생각해라. 그리고 글을 가두지 말고 쏟아내라고, 글을 고쳐주는 것은 편집의 전문가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맡긴다고 생각하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시는 내내 웃으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선택하셨다. 서로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집에 가는 길에 꼭 다 읽어 보겠다고 약속해주는 사람까지 생겼다. 위안. 위로. 힐링. 나는 얼굴을 두 번 본 타인에게, 두 번 간 공간에서, 두 번 본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작가 선생님이 그 공간에서,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한 이야기도 아닌데 내게 크게 다가온 한 문장은 “초고는 그래도 괜찮아.” 였다. 집에 도착했는데도 그 말이 잊히지 않았다. 


 나는 완벽주의가 심하다. 초고는 그래도 괜찮다는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같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올해의 나는, 특히 힘들었다. 아마 쌓이고 쌓인 것들이 올해가 돼서야 터져버린 것 같다. 나는 대체 뭘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뭔가를 성공한 적은 있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성공의 기준이 높아서였다. 

    

 어렸을 때 내가 처음 받은 상. 독후감 대회였나, 꽤 큰 상이었다. 무려 우수상이었다. 성장기 어린이들의 자존감을 위해 반에서 아이들에게 다 주는 상이 아닌 앞에 나가서 받는 상이었다. 나는 너무 뿌듯했다. 글 쓰는데 소질이 있는 거 아냐? 나는 그때 할머니 집에서 살았고,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엄마한테 보여주면 엄마한테 칭찬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뿌듯했다. 그러나 엄마는 내 예상과 다른 말을 했다. 독후감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끝마침에 ‘나도 남들에게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글이 있었는데 엄마는 피식 웃으며 동생한테나 배려하라고 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속상해서 밤에 되게 많이 울었다.

 이십여 년도 더 지난 지금,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말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내가 참 좋은 사람이 됐을 텐데. 부러 서운한 마음에 가시 돋친 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엄마는 웃으며 엄마가 선견지명이 있었네~ 너희 둘이 얼마나 싸웠던 줄 아냐~ 하고 넘겼다. 우리 집은 화법이 모두가 다 이렇다. 나는 그런 화법에 상처를 받을 뿐이다. 그리고 나 또한 남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상은 나에게 성공이 되지 않는다. 나는 가족들한테 칭찬받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할머니나 아빠나 둘 중 하나는 칭찬을 해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아이에게 칭찬을 받지 못한 건 성공이 아닌,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다. 


 내가 두 번째로 상은 열 살인가 열 한 살 때 피아노 학원에서 나간 콩쿠르 대회였다. 나는 피아노로 나가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성악 부문으로 나가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피아노를 못 쳐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어쨌든 연습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러 무대로 올랐다. 태어나서 그런 긴장은 처음이었다. 처음 서 보는 커다란 무대였다. 덜덜 떨면서 반주에 맞춰 나는 노래를 불렀고, 가장 높은 음에서 삑사리를 냈다. 그 순간 가운데 앉은 심사위원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엉엉 울었다. 그 심사위원이 심사결과 발표 전, 마지막 소감을 이야기할 때도 다들 열심히 준비했어요, 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떤 친구는 너무 열심히 해서 목이 간 상태에도 오르는 게 안쓰러웠고” 하는데 얼굴이 또 달아올랐다. 눈물을 참느라고 무던히 애썼다. 

 나는 그때도 상을 받았다. 상장에 영어와 한글이 적힌, 처음 받아보는 상에 트로피도 받았다. 높은음자리표가 그려져 있는 트로피였다. 지금은 뭔 상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냥 그런 말, 심사위원의 표정과 엉엉 울던 순간의 기억들만 아직도 남아있다. 나는 성공에 대한 기준이 높다. 그래서 이 작은 상조차 성공으로 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도전을 시작한 자체가 성공이라고 했다. 말이야 할 수 있겠지만 내 안에서 인정이 안 된다. 이런 삐뚤어짐이 나를 계속 힘들게 했다.      


 어느 날, 나의 완벽주의를 인정하기 시작하고 과거를 인정한 순간부터, 한동안 우울감이 찾아왔다. 잠을 계속 못 자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짜증도 많이 나고 무기력하고 재미가 없다. 사실 이런지는 꽤 됐을 텐데.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고 생각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내뱉는 게 많아졌다. 부정적인, 우울한 문장투성이.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그냥 안 그런 척했을 뿐이었다. 이틀 동안 나는 짜증이 나면 짜증나. 하기 싫으면 하기 싫어. 잠 와. 자고 일어나서 하 허무해. 입 밖으로 내뱉으며 더 우울해졌다. 이럴 거면 왜 사는 걸까. 이런 날이 이틀만 반복됐는데도 아, 나는 너무 내가 싫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를 안 봤으면 했다. 만나자고 하는데도 그래 했다가 아니다 보지 말자, 했다가 다시 연락해서 만나자, 했다가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짓들을 내가 제일 많이 하고 있었다. 유치원생에서 머리가 덜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을 기록하며, 적어내며, 드는 생각들을 기술하며 조금씩 정리를 해갔다. 글과 사진과 동영상과 음악으로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켰다. 한순간에 달라지는 건 없다. 서서히 변해간다. 너무너무 수렁으로 빠지는 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일도 재미없고, 뭘 봐도 재미가 없었다. 글은 더더욱 쓰기 싫다. 그림을 그렸다. 낙서로 시작되었다. 뭐가 이렇게 힘들까.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들. 주제가 생각나자 끝도 없이 그림을 그리게 됐다. 종이에 낙서가 가득 찼다.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하나가 피어나고, 그러면 또 다른 게 여러 갈래로 펼쳐진다. 내가 좋아하는 걸 그려보라고 하면 이렇게 빠른 시간에 많이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거에 너무 머물러 있다. 그림을 그려보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어휴, 다시 모든 것이 다 귀찮아졌다. 조금만 나에 대해 파고들려고 하면 농담으로 넘겼다. 힘드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했다. 남 눈치를 많이 보고,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남들은 나에게 의지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남들에게 의지하기 싫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이니 이제 남들이 나한테 의지하는 것도 귀찮아졌다. 나는 원래 이기적인 사람인데 착한 척하는 사람이었나? 하는 고민도 생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들


 그냥, 이게 원래 내 모습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피해 다니면서 나의 상상으로 이것저것 걸치고 중무장한 나는, 그냥 내 바람이었다. 중무장이라는 단어로 나는 가시를 세웠지만, 사실 어디 안에 가둬놨을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힘들어서 설움이 복받쳤다.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나는 독립을 했고, 집과 가족에 대한 핑계를 더는 댈 수 없는 현실과 마주했다. 그러자 댈 핑계가 없어 사람 탓을 했다. 조금만 거슬리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하게 화내고 성질을 냈다. 속이 시원하게 풀릴 줄 알았다. 이제까지 그래왔다. 결과는, 그냥 답답하고 서러웠다. 이겨내고 싶었고, 지기 싫었다. 그래서 오기 하나만으로 살아왔다. 그런데도 결과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내가 있었다. 나는 힘들고 우울해도 그 상태로 밖을 나가야만 했고,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쳤다. 아무리 껴입어도 날은 춥고 비는 우산 안으로 다 들어와서 그냥 우산을 버리고 걸어야 했다. 우산을 버리기가, 참 쉽지 않았다. 


 글쓰기 모임의 작가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초고는 그래도 괜찮다. 날 것의 문장들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덧붙이셨다. 나중에 지우고 싶은 문장이 생겨도 취소선을 그어놓으면 놓았지, 지우고, 삭제하지는 말라고. 나중에 어떻게 나에게 올지 모르는 문장들을 그대로 두라고. 

 나는 이 모든 문장을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 지금 나의 시기는 초고와 같다고. 주위를 돌아보니, 완벽주의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완벽할 수 없지만, 완벽을 강요받아야 했던 우리들에게,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던 우리들에게 제일 필요한 말은 어쩌면 초고 때는, 지금 너 때는 그래도 괜찮아, 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완벽할 수 없는데도 다 잘해야 했다. 나는 글도 쓸 줄 모르고 수업도 들은 적 없고, 어디서 배운 적도 없다. 글쓰기에 대한 수업을 들어 본 적도 없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나는 글로 먹고 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모든 것은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 였으니까. 그래도 괜찮다는 한마디가 나는 앞으로 계속 글을 써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다.   

   

 오글거리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해 오해도 많이 받던 과거의 내가 있다. 물론 지금도 종종 그렇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 안 하면서 왜 굳이 말을 꼬아서 해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냐고, 좀 고치라고 한다. 말을 밉게 해서 손해를 보고, 돌이켜서 후회한다. 과거에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을 어떻게 쏟아내는가, 부끄러워서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이건 지워야지, 저건 지워야지, 너무 중2병 같아. 지우고 지워서 정제시켜서 나름 내가 만족할 만한 글을 써냈다. 그러고 나면, 훗날 머릿속에서 잊히는 글밖에 남지 않았다. 초고 때는 그래도 된다는 것을 몰랐던 우리는 뭘 하든 처음부터 완벽해야만 했다. 남들한테는 안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과할 정도로 엄격하다. 세상을 구하는 초능력을 가진 게 아니면 특별하다고 쳐주지 못하는 사람들마냥.   

  

 나는 아직 초고에도 닿지 못했나 보다. 가장 뜨거운 글을 쓰기엔 내 방어기제가 너무 세다. 상처받기 싫어서 세워놓은 철장이 너무 높다. 나만 쓸 수 있는 그 무언가는 내 철장을 부숴야 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철장을 세워놓은 것도 나고, 그 안에 가둬 놓은 것도 나다. 열쇠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안다. 부술 필요도 없이, 열쇠로 따고 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너무 오랫동안 그러지 못해서, 사람 습관은 참 무섭다. 아무도 나한테 글을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데, 나는 초고도 안 써보고 나는 글을 안 쓸 거야, 라고 생각했다. 완벽주의는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완벽주의.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단어지만, 사람을 겁쟁이로 만드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인생에 있어서 초고도 안 써본 사람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십 년 넘게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치겠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반대로 생각해보면 앞으로의 이십 년은 받아들이면서 살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나는 초고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일단 다 쏟아내고, 마음에 안 들면 취소선을 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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