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맑음 Jan 02. 2021

우리가 사주를 보는 이유

복채는 라이킷


 며칠 전에 관상을 보러 갔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인데, 개인적으로 관상을 보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사주는 잘 보러 다닌다. 때때로 주위 Y들은 내게 너 그거 병이야, 라고 할 정도로 자주 본다. 사실 난 그렇게 자주 본다고 생각은 안 한다. 보고나서 주위에 얘기를 많이 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어쨌든, 보는 건 좋아한다. 재밌으니까. 관상을 보러 갔을 때 관상가 선생님의 첫 마디는 이러했다. “이런 거 잘 안 믿으면서 왜 보러 오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저 이런 거 되게 자주 보러 다녀요. 여기도 제가 오자고 한건데!”, 그러자 돌아오는 답은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만 가실 것 같은데, 사람 되게 안 믿잖아요.” 속으로 생각했다. 오, 여기 용한데? 




 심적으로 힘든 시기엔 사주를 정말 많이 보러 다녔다. 내가 사는 곳이든 서울이든 보러 가기도 하고, 전화 신점도 해보고. 용한 데가 있다고 하면 어딘지 물어 예약하기도 했다. 항상 예약이 가득 차 있어 가기 힘들었다. 신점은 한 번 보고는 싶었는데 약간 무섭기도 했다. 귀신 쓰이면 어떡해, 하는 생각도 들고. 신점을 보는 사람들의 기에 내가 눌려서 부적이든 굿이든 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아직 귀신보다는 돈이 무서운 사람인가보다. 사주를 보는 돈이 많이 비싸지면 보지 않게 된다. 

 여러 군데 다니며 생각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는 데가 나올 때까지 보러 가는구만. 웬만한 곳은 좋은 이야기만 해주려고 하는 것도 알았다. 전화신점을 봤을 때, 취업 운에 대해 물어봤는데 약간 섬뜩했다. 방울소리가 계속 들리고 옆에서 할머니귀신이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언니, 할머니가 ~래. 할머니가 조상들 중에 옷을 만들거나 천을 만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취업을 했고 나는 그때 적어놓은 신점의 결과를 다시 펼쳤다. 결과적으로는 뭐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고 그랬다. 참고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께 우리 조상들 중에 그런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있냐고 묻자 할머니들은 신경도 안 쓰며 대답했다. 그 시절에 그거 안 한 사람이 어딨겠냐? 돈 벌라면 이거나 저거나 다 했지. 뭐 거슬러 올라 올라가면 누군간 했겠지, 했다. 나는 그냥 맞네, 하며 웃었다.


 사주에 돈을 많이 쓰면 알게 된다. 대부분 나에게 전체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비슷하다. 나의 생일, 태어난 시각, 이름을 종합해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어딜 가나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는다. 돈을 못 모을 것이다, 사업은 절대 하지마라, 돈 빌려주지 마라, 남들이 네 이야기를 하고 구설수에 많이 오를 것이다, 초년 운이 안 좋다, 마흔부터 일이 풀릴 것이다, 등등. 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어쨌든 나는 저런 빅데이터를 종합해서 일종의 지표로 쓴다. 사주를 보러갔는데 사업을 하라고 하는 곳은 아, 여기 다음부턴 안와야지 하고 거른다. 샤머니즘의 현대화가 어찌 보면 재밌지 않은가? 


 사주, 타로, 관상을 왜 많이 보러 갈까? 이전에는 여자들이 특히 맹신하고 많이 보러 간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자들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안 되는 것들이 많아 사주를 더 많이 보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오래 전 과거에는 여자들이 결혼, 자식, 연애로 삶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남자를 잘 만나야 인생을 핀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으니 운에 맡기는 것일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일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 많아지니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남자들도 되게 많이 보는구나. 정계에 있는 사람들이나 사업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특히 많이 믿는구나. 남들에게 말을 안 하고 볼 뿐이지, 다들 많이 보러 다니는구나. 특히 주변 Y들은 이제 남자들이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내가 사주를 보고 왔다고 하면, 어딘지 물어보고 다녀온다. 다들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거나 계약직이 많다. 계약이 끝나면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Y도 있고,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다수다. 


 사주는 같은 결과도 해석이 참 다르다. 믿고 싶은 말만 더 믿게 되는 이유가 이러하지 않을까. 여자들이 사주를 보러 가면 “남자복”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를 끌기 좋다. 과거의 여자들에게 성공은 시집을 잘 가는 것이었으니 그러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새는 해석이 다르다고 한다. 현대에는 “남자복”을 취업 운으로 바꿔 해석해주는 곳도 많다고 한다. 이전에는 여성에게 성공은 남자를 잘 만나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엔 여자 사주의 재물 운이나 관직 운을 남편 운으로 봤지만 지금 해석으로는 다르게 푼다고. “아홉수”에 대한 해석도 그렇다. 열아홉, 스물아홉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지만, 어떤 풀이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각각 사람들마다 각자의 아홉수가 있으니 꼭 스물아홉이 아홉수는 아니라고. 다들 해석이 다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여잔데 아홉수 때문에 결혼이나 사업이 망설여지신다면, 포털 사이트에 아홉수를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남자나이에 적용되는 수”라고 뜬다. 


 이렇게 해석이 다른데 왜 사주를 믿게 될까, 정말 힘든 사람이 많나 보다. 나는 종교가 없기에 개인적으로 종교와 사주를 비슷하게 본다. 사람이 힘들면 어딘가 의지하고 싶으니 종교든 사주든 믿게 된다고 생각한다. 몸이 힘들면 병원을 찾듯 마음이 힘들어도 병원에 가는 것이 좋은데, 사주로 심리 상담을 대신 하는 것 같다. 비용의 문제도 있고, 시선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정신과는 기록에 남아 취업이 힘들다는 루머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들은 자녀가 정신과에 가는 건 극도로 싫어하기에 몰래 다니는 사람도 많은 반면, 사주는 부모가 자녀의 사주까지 대신 봐주는 경우도 많다. 특히 수험생들이나 취업준비생이 많은 곳 주변에는 사주나 타로를 보는 곳이 많다. 사주가 ‘k-테라피’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몇 십 년을 함께 한 가족들의 조언, 오래 봐 온 친구들의 조언은 믿지 않으면서 처음 본 사람에게 몇 만원 주고받는 대가는 이상하게 믿게 된다. 재밌는 건 가족들과 친구들도 사주에서 이랬대, 하면 믿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못 믿는 걸까, 현실을 믿기 힘들 걸까. 수동적으로 살아온 경향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하지 않은 선택으로 살아온 삶에서 내가 결정을 해야 하는 날이 오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정해주는 방향을 택하게 되는 것도 사주를 믿는데 영향을 줄 것 같다. 모든 것의 이유는 복합적이니. 사주는 약간 무기로 쓰기에 좋다. 주위에서 취업이나 결혼에 대해 얘기할 때, 나 이번에 사주를 보러 갔더니 ~살 때 한다던데! 라고 하면 그 뒤로 이야기를 안 한다. 잔소리에 스트레스 받거나 불리할 때는 막 지어내면 된다. 이상하게 다들 그 뒤로는 아무 말 않는다. 얘가 그것 땜에 혼자 걱정 되서 저런 것도 보러 갔구나, 생각한다.


 할머니는 예전에 나와 막내가 삼재라 하여 세 명의 부적을 사왔다. 참고로 부적은 하나가 아니다. 지갑에 넣는 것, 이부자리 밑에 넣는 것, 베개에 넣는 것, 옷 모양으로 생겨 입는 것 등 여러 개가 있다. 남자의 경우에는 입었던 속옷이나 내의를 가져가 태우기도 했던 것 같다. 예전부터 온 가족이 돌아가며 부적이든 뭐든 붙여 놓은 게 있었기에 봤을 뿐 난 자세히 모르고, 별로 더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다. 어렸을 땐 부적을 보면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할머니가 세 명의 부적을 잔뜩 받아 온 것을 보며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따, 이 절 한 몫 단단히 챙겼겠다, 이었다. 너무 염세적인가? 어쨌든 기왕 돈 주고 사오셨으니 지갑에도 넣고 침대 밑에도 넣고, 문 위에도 붙여 놨다. 부적을 받아 오고 한 동안 계속 할머니의 전화가 왔다. 제대로 넣었냐, 제대로 붙였냐? 가끔 문 위에 붙어 있는 부적을 보며 생각한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있구나. 


 11월 말에 누구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남아서 사주를 한 번 보러 갔는데 기분이 좋았다. 딱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고, 그냥 매번 했던 이야기를 했다.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말했기 때문이다. 항상 나는 좋아하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데 어디 쪽으로 취업해야 할까요? 라고 했고,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공무원, 의사, 변호사 등. 세상의 모든 직업은 다 나올 기세였다. 나는 공무원 공부도 했었는데, 라고 대답하면 돌아오는 답은 한 3년 해야 해, 붙을 때 까지 해야 해, 이었다. 내가 공무원이 길인데 가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힘든가 생각했던 적도 있다. 시험 준비 할 때 들었으면 힘이 됐을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대답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잘 풀릴 거라 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사주를 보러 가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이 길이 맞나요?를 물었고, “하고 싶은 것” 이라고 말 한 자체가 좋았다.  이번 관상도 성공적이었다.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좋은 말이란,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지금 잘 하고 있으니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얼굴을 근거로 하며 말해줘서 마음이 편안했다. 




 신년이 됐으니 아마 사주나 관상을 보러 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코로나로 다들 너무 힘들었으니 작년보다 더 많이 보러 가지 않을까 싶다. 아마 엄마나 할머니도 이번에 보러 갈 듯 하다. 뭐든 맹신하지만 않는다면 팍팍한 삶에서 이정도 힐링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굳이 보고 온 사람에게 그런 걸 뭐 하러 봤냐고 말하지는 말자. 그들도 알면서 갔다 오는 것이니까. 다들 걱정 한 두 스푼,  힘든 마음 두 세 스푼, 잘 됐으면 하는 가족 하나씩은 안고 살아가니까. 올해 사주에 가져가는 그 걱정들이 다음 해까지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라주자.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만 관람가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