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진실보다 중요한 것
번화가에서 열린 한 마켓에 갔다가 신기한 거울을 보았다. 왜곡 하나 없는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울이었다. 나와 일행들은 그 거울 앞에 섰고, 순간 당황해 누가 볼세라 황급히 돌아섰다. 그 뒤로 우리는 몇 분간 말이 없었다. 침묵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나… 진짜 그렇게 생겼어? 얼굴이 완전 짝짝이던데…”
“나두… 주름이 너무 자글자글하더라. 언제 그렇게 늙은 거지?”
“야, 나야말로 다크서클 진짜 심하던데… 제거 수술하고 싶다.”
뭐어? 그게 수술로 되는 거야? 그래? 그런 게 있어? 말이 터진 우리는 성형외과와 피부과에 이어 지방흡입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불안과 불편, 나아가 불쾌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마켓에 나온 온갖 유혹적인 음식을 즐길 생각에 신났었는데 갑자기 뭘 먹기 좀 뭐한 그 어떤 죄책감이 일었다. “이 얼굴로 뭐 맛있는 걸 먹겠다고… 닥치고 다이어트나 하자…”
나 정도면 그래도 반에서 성적 중위권은 한다고 믿었는데 내신 등급을 내보니 최하위더라는, 그런 류의 실망감과 슬픔이랄까. 이렇게 여자들이 터덜터덜 걷는 동안, 마지막으로 그 거울을 봤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도너츠를 맛있게 흡입하면서.
“진짜가 뭐가 중요해? 스스로 괜찮다 생각하면 괜찮은 거지.”
우리는 입을 모아 대항했다.“진짜가 중요하지 그럼 뭐가 중요한데! 지금 스스로 괜찮지가 않다고!”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너츠를 쫀득거리며 말했다. “누군가는 신이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믿잖아. 산타가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도 우리는 산타를 믿고. 라면이 유해해도 맛있게 먹으면 기분 좋고. 상한 지 모르고 먹으면 탈도 안 나. 인식이 중요하지 실체가 중요한 게 아냐. 내가 보기엔 다들 예뻐. 스스로도 예쁘다고 인식하면 예쁜 거야. 오케? 자 이제 한입씩들 해.”
남편의 인식론 열창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사르르 녹는 도너츠를 다같이 쫀득거리며 그래 뭐 어때 이제 와서 연예인이라도 할 거냐, 이렇게 생겨도 지금껏 잘 살았어, 굉장한 합리화를 시작했다. 문제 의식이 사라지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 진실의 거울이 가끔 생각난다. 거울을 볼 때마다 에어리언 같던 내 얼굴을 1초씩은 떠올리게 되는데, 어차피 그렇게 생긴 게 진실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한 게 낫다 싶어 성형외과에 가느니 최대한 예뻐 보이는 거울을 찾는 쪽으로 가닥을 바꿨다. 포토그래퍼인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화소가 너무 높은 카메라로 찍으면 어떤 사람이든 징그럽게 나온다.” 나는 행복을 위해 저화소를 택하겠다.
글 : 김추추(writer0511@gmail.com)
글, 그림 : 김표고(인스타그램 : @kimpyogo / 메일 : kimpyogo@naver.com)
<프로젝트 소개>
자주 떠오르는, 매주 한 단어
일상의 지문들
김표고 X 김추추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그 대답이 될 만한 단어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참 평범한 것 같은 일상인데 이 단어를 적다 보니 각자의 일상은 꼭 그 사람만의 지문이 되었습니다. 떠올려보세요. 당신에게도 소중할, 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기타 등등의 연애' 저자이자 매일 3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징그럽게 성실한) 김표고와, 매거진 에디터로 12년을 일하다가 지금은 좀 더 다양한 글을 쓰(고 혼자 읽)는 김추추가 함께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