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처음 극울 증상이 발현됐었는지 생각해보면 대학교 1학년 때였던 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입시를 준비하면서 너무 무리를 했던 탓인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팠거든요. 할 수 없이 2학기를 휴학하고 각종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어떤 병원에서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한약과 양약을 닥치는 대로 먹어봤지만 웬만큼 견딜만한 상태로 나아지기까지 6개월이 걸렸습니다. 입시를 끝내고 한창 즐거운 대학시절을 보내는 친구들과 달리 누워만 있어야 하는 시간들은 끔찍했습니다. 그때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보라고 의사 한 명이라도 얘기를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나라도 서양처럼 주치의 제도가 있어서 저를 수년에 걸쳐 관찰했던 의사라면 정신건강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후 10년도 넘어서야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보게 되었고 그나마 지금의 병으로 제대로 진단을 받기까지는 15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저는 이유 없는 자살충동과 감정의 기복을 겪어야 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울상태였다고 생각될 정도로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저는 주변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닌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온갖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정신건강의학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울 증상의 경우 처음에는 우울감, 무기력감이 나타나다가 오랫동안 방치되면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조울증으로 인한 울증상은 보통 어떤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나타나는 우울증과 달리 호르몬의 문제이기 때문에 외부적인 요인이 전혀 없어도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병을 진단받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게다가 저는 어릴 때부터 늘 허약해서 온갖 증상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신체적인 고통이 조울증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건 더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오랜 시간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에 시달리고 오진마저 겪어서 괴로웠던 시간을 지날 때 정확한 진단만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병이라도 좋으니 정확히 알고 고칠 수 있으면 이유 모를 고통 속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았거든요. 그리고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서 병을 진단받고, 또 고치는 과정에도 몇 년을 부작용을 겪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갈 수 있다면 저보다 덜 힘들지 모른다고요.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원인을 찾지 못했을 때, 누군가의 우울증 투병일기를 남편이 우연히 보고 저와 증상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보게 되었는데요. 그 글을 보지 못했다면 저는 여전히 병원을 전전하면서 이유 모를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감사한 것은, 제가 병원을 다니게 되면서 제 주변사람들도 자신의 증상이 정신과적인 질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지인은 공황장애를 고치고 어떤 친구는 산후우울증을 고치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강박증으로 늘 불면에 시달리던 친구는 적절한 처방을 통해서 불면증과 강박증 모두 개선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목격하면서 저는 더 용기를 내게 됐고, 제 이야기를 통해서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는 분들이 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작용 수집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보고 병원에 가보게 되었다는 댓글이나, 비슷한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위로가 된다는 댓글을 보면 생각합니다. 작게나마 도울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고요.
시간을 돌려서 더 빨리 병원을 갈 수 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치료 과정에서 겪는 부작용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유 없는 고통과 우울감으로 막막하던 시간보다는 훨씬 견딜만하거든요.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고 후회를 하기보다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이것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 저를 사랑하고 응원해준 모두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22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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