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진단을 받기 전, 저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고 힘든 것을 그저 참기만 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저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한 것. 그것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한 것입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의 연애에서는 저는 늘 을의 연애를 했습니다. 자주 아팠지만 괜찮은 척했고 누굴 만나도 심지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조차 버림받을까 봐 전전긍긍하기까지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늘 아픈 제 자신이 혐오스러웠고 그래서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나 자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줄 수 있겠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찾고 싶었습니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고 그런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요. 서른이 될 때까지 백번에 가까운 소개팅을 하면서 수없는 거절을 겪고, 또 몇 번의 연애가 찾아왔지만 꿈꾸던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진정한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외롭고 불안했는데, 꾸밈없는 모습의 저를 이해하고 저의 장점으로 상대방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노력 끝에 저는 화려하지 않지만 속이 깊고 따뜻한 사람인 최곰을 발견했고, 온라인으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트위터 친구였던 그에게 만나자고 말할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서 바로 알아봤습니다. 이 사람이다라고요.
관대하고 다정한 그는 저의 잦은 아픔과 깊은 어둠에도 짜증스러워하지 않고 저의 장점은 크게 봐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고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괜찮은 척, 밝은 척하느라 에너지를 과하게 쓰고 헤어지고 나서는 앓아눕곤 했는데, 최곰을 만났을 때는 헤어져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같이 있으면 혼자 있을 때보다 안정되고 행복한 기분까지 드는 건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안정되고 편안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일까요. 저는 그를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일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는 일들이 좋았고, 그에게 잘 어울리는 멋진 옷을 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결혼하고 나서 훨씬 멋있어졌다고 칭찬을 듣고 온 날이면 제가 칭찬을 들은 것처럼 신이나기도 했습니다.
상태가 악화되어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아픈 제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묵묵히 옆에 있어주었기에 예전처럼 지독하게 서럽지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이면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고, 나의 별거 없는 심심한 하루를 듣고 잘했다 칭찬해주는 이가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꾸린 작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아픈데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을 주는 곳이었고, 아프면 가만히 자기의 체온을 더해주는 고양이와 옆에서 웃게 해 주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힘이었습니다. 투병을 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부작용에도 어떻게 치료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다들 묻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남편과 계속 같이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견뎠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병과 싸워왔습니다.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면 인생에서 직업선택이나 결혼 같은 몇 번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옵니다. 우울증 혹은 조울증 때문에 타인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어렵거나 혼자 있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된다면,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직장과 몇 십 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결혼을 선택할 때 자신의 성향을 충분히 고려하셔서 선택하셨으면 합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남들도 다 하는 거니까라는 이유로 선택했다가 자신의 성향과 너무 맞지 않으면 선택을 번복하거나 다시 시작하기는 너무 힘드니까요.
병은 저에게 갑자기 찾아왔고,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짐이 될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건 가족 덕분입니다. 앞으로 또 깊은 울이 찾아오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날도 있겠지만 저를 지켜준 울타리가
되어준 가족을 위해 이겨낼 겁니다. 여러분도 울이 찾아와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울타리를 만드시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 다음에는 마지막 이야기,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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