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케이칼 사례로 LBO 이해하기
오랜만입니다. 한주에 하나라는 약속을 12월 들어 못 지켰네요.
글감은 떠오르는데 막상 컴퓨터 앞에서 글로 옮겨 적지를 못 했습니다. 올 한 해가 가버리기 전에 그래도 글 하나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좀 급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글의 소재는 LBO입니다.
얼마 전 DL케미칼이라는 회사가 미국의 상장사를 LBO 방식으로 인수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LBO가 뭐고 또 실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비슷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면 이건 회사 측에서 보도자료를 뿌렸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목도 비슷할 뿐 아니라 내용도 거의 복사 수준입니다. 기사의 량과 뉴스의 밸류 그리고 중요도는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LBO는 주택담보대출 같은 것
LBO는 레버리지 바이아웃(leveraged buyout), 우리말로 보통 차입매수라고 표현합니다. 차입이라는 게 빌리다는 의미잖아요. 그러니 결국 빌려서 뭔가를 산다는 겁니다. LBO는 기업을 인수하고 파는 M&A 시장에서 쓰이는 자금 조달 방법 중 하나니 그 뭔가를 산다는 건 기업을 산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현금 20억을 들고 있는 A라는 회사가 M&A 매물로 나온 100억짜리 B라는 회사를 사려합니다. 인수 자금이 부족한 A라는 회사는 일단 B회사를 사기로 계약하고 20억을 지불합니다. 그리고 이 인수 계약서를 들고 금융권에 가죠. "이제 B회사는 제껍니다. B회사를 담보로 80억만 빌려주세요" A회사는 이렇게 80억 원을 대출받아서 인수 잔금을 치르고 B회사의 인수를 마무리합니다. 자 '여기서 피인수 회사인 B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이걸 인수자금으로 사용하는 것' 이걸 바로 LBO, 차입매수라고 합니다.
어? 이래도 되는 거야 라는 생각도 들죠. 아직 인수가 끝난 것도 아닌데 계약서만 쓰고 인수할 회사를 활용해 대출을 받다니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런 비슷한 방식의 대출을 저희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입니다. 구조가 똑같습니다. 집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매매 계약서로 은행에 가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루잖아요.
자 다시 기사로 돌아가 볼까요?
DL케미칼이 클레이튼이라는 글로벌 석유화학 회사를 인수하는데 LBO 방식을 사용했다는 건 클레이튼이라는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은행권에서 돈을 빌렸다는 얘깁니다. 돈 빌린 게 뭐 자랑이라고 보도자료까지 써서 이렇게 홍보를 할까요? M&A 시장에서는 인수자금 조달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큰돈을 싼 값에 빌렸느냐가 M&A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평가하는 요소로 활용되기도 하죠. 더구나 DL케미칼은 국내에서야 금융권에서 이름값을 좀 쳐주지만 해외에선 이른바 듣보잡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LBO방식으로 자금조달에 성공했다는 건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또 또 이렇게 자금 조달을 하고 클레이튼의 인수를 사실상 마무리합니다라는 걸 알리는 것이고요.
LBO 어떨 땐 합법, 어떨 땐 불법
LBO는 국내에선 종종 배임 이슈로 문제가 됩니다. 앞서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진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주택담보대출 같은 거라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니 종종 문제가 된다는 건 또 무슨 얘길까요?
둘의 차이를 한번 살펴보죠.
집은 대부분 1인 소유죠. 하지만 기업 특히 주식회사는 수많은 주주들이 주인입니다. 예를 들어 현관부터 거실까지만 사고 내가 집의 절반 정도 샀으니 이 집의 소유권은 나한테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업은 다릅니다. 이른바 경영권(이사회 장악)을 가져올 정도의 지분만 확보하면 해당 기업을 인수했다고 표현합니다. 이렇다 보니 기업을 사고팔 때 LBO 방식이 사용되면 경영권이 동반된 지분을 판 대주주와 이 사실을 모르던 나머지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나머지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한 대출 승인에 대해 경영진의 배임 혐의를 적용하는 거죠.
LBO 인수의 마무리는 결국 합병
그럼 미국에선 어떨까요? 미국에선 딱히 배임 문제가 불거지지 않아요. 하지만 역시 미국은 자본주의 시장의 천국이구나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미국은 M&A를 진행할 때 우리보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대주주가 지분을 팔고 나갈 때 공개의무매수제라는 걸 시행해야 하는데 이게 사실상 인수하는 쪽 입장에서는 지분 전체를 사야 하는 제도와 다름없거든요. 대주주가 지분을 팔고 나갈 때 나머지 주주들 중 너만 파냐? 나도 팔란다라고 하면 이 주식을 사줘야 하는 제도입니다.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 나오는 M&A 중에는 100% 지분 인수가 많습니다. 100% 지분을 인수해야 한다면 사실 앞서 주택담보대출과 다를 게 없잖아요. 이해관계가 충돌할 다른 주주들이 없다는 얘기이니 배임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거죠. 그럼 국내에서는 이 배임 이슈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보통은 인수 마무리에 두 회사가 합병을 합니다. A사가 B사를 인수하는데 B사의 자산을 담보로 A사가 돈을 빌렸어요. A사는 좋은 조건에 돈을 사용했고 B사는 담보를 제공하는 부담을 안았습니다. B가 불리한 일을 한 거죠. 하지만 마지막에 A사와 B사가 합병을 해버리면 결국 A사는 자신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게 돼 버리는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