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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un 27. 2018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기.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기 위해서 싫어할 때가 있다.

비 오는 날이 그렇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데, 대게 내 기분의 상태가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세상이 축축해지고 나도 축축 처지는 것 같다. 우산을 쓰고 다니거나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도 싫다. 신발이나 옷이 젖는 것도 싫고, 눅눅해지는 것도 싫다. 온갖 것들이 비 오는 날을 싫어하도록 만드는 지표가 된다.


그렇게 싫어하는 비 오는 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에 나왔는데 온 세상의 색이 선명해지는 것을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면 비 오는 날이 좋아질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내가 글을 써서 세상을 진하게 만드는 것처럼, 빗방울이 그 물빛으로 세상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마치 물감을 덧대는 것과 같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짙은 색의 세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다. 감동을 받은 것이다. 역시, 아름다운 세상이야, 하고.

하지만 나는 나의 알량한 신념도 지키고 싶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것도 신념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온갖 짜증을 섞어 전심전력으로 투덜거린다. 비 오는 날이 싫어.

비 오는 날에 대한 말도 안 되는 혐오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비 오는 날을 싫어하게 만드는 것일까. 정말로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될 수는 없을까. 좋아할 만한 이유들이 제 아무리 타당성을 뽐내도 채 못 미덥게 된다.

버스에 몸을 얹는다. 창 밖을 가볍게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정겹다. 우산을 쓰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하늘은 흐린 먹색이지만, 아스팔트 땅은 푹 젖어 짙은 흑색이다.

버스가 멈추고 승객을 태울 때마다 비 냄새가 훅 풍긴다. 습하고 비릿한 냄새. 결코 좋아질 수 없는 요소다. 이러니 비 오는 날을 좋아하려는 마음이 생기다가 말아버리는 거다.

핑계를 붙여본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할 만한 '타당한' 이유는 딱히 없다.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나는 오이를 싫어한다. 비린 맛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주관적인 이유이기 때문에 타인을 설득시킬 수 있는 '타당한' 근거는 되지 않는다.

결국 좋고 싫음은 마음의 문제다.

이쯤 되면 오기가 생긴다.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싫어하고 싶어서 싫어한다고 하자. 그러니까 나는 오이를 싫어하고 싶은 사람이면서 비 오는 날을 싫어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싫어하기 위해서 싫어하기로 하자.


장마는 이제 막 시작했고,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할 수 없는 나를 싫어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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