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덕질의 완성, 이사카 코타로와 북토크 그리고 사인회
<사신 치바>라는 책과 <중력 삐에로>라는 책에 대해 신문 지면 광고를 짤막하게 접하고는 흥미로운 책이라는 생각을 했고,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십몇 년 전 구입해 읽었던 것이 이사카 월드와의 첫 조우였을 것이다. 그 순간의 강렬함을 잊지 못해 한국에 번역, 출간된 그의 모든 작품을 하나씩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사신 치바>는 '치바'라는 이름을 가진 사신이 인간 속에 스며들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을 일주일 간 관찰하여 정말 죽을지 말지 가/부를 가리는 일을 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한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하지만 결말부에 가서는 조각난 이야기들이 섬세하게 엮이며 하나의 큰 흐름을 완성하는데 그 짜릿함은 분명 잊을 수 없는 순간인 것이다. <중력 삐에로>는 하루와 이즈미 형제에게 일어나는 슬프고도 가슴 아픈 진실과 따스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사신 치바>와 <중력 삐에로> 사이의 연관 관계를 발견했을 때는 말 그대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 뒤로 <종말의 바보>, <사막>, <러시 라이프>(이건 최근에 다시 읽고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칠드런>, <오듀본의 기도>, <마왕>,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피쉬 스토리>를 모드 고등학교 다닐 때 섭렵하고 말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나왔고, 물론 매번 출간 때마다 구입해 읽었다.
한국에선 강동원 주연의 동명 영화로 알려진 <골든 슬럼버>는 대학교 1학년 때인 2008년에 읽고는 내 전공과 기묘하게 어울리는 이야기들이 읽는 내내 즐겁기 그지없었다. 한국엔 뒤늦게 번역 출간된 <그래스호퍼>도 출간되자마자 낼름 구입해 읽었고, 이어서 <바이바이, 블랙버드>,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SOS 원숭이>, <오! 파더> 그래스호퍼의 계보를 잇는 <마리아 비틀>, <모던 타임스>, <가솔린 생활> 등을 아마 대학 졸업 전까지 다 읽지 않았을까 싶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자마자 그간 읽지 못했던 그의 이후 작품들, <사신의 7일>,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밤의 나라 쿠파>,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다가 그의 유일무이한 에세이집인 <그것도 괜찮겠네>와 무려 로맨스 소설(!) <아이네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도 섭렵했다. 최근에는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와 <화이트 래빗> 읽기를 마쳤고, 읽을까 말까 고민하던 다른 작가와의 합작인 <캡틴 선더볼트>도 읽고, (물론 브런치에 리뷰까지 썼으며) 현재 바로 3일 전에 받은 그의 가장 최신작 <악스 AX>를 읽는 중이다.
나 이쯤 되면 이사카 코타로 덕후라고 해도 되는 거 맞지?
나는 한 가지에 빠지면 그것만 죽어라고 판다. 아이유 노래를 좋아해서 아이유 노래만 수천 번 반복해서 듣는다. 한국 작가 중에선 김애란 작가를 좋아해, 그의 작품을 모두 섭렵했다. 이사카 코타로를 좋아하기 시작한 지 십몇 년이 지났고 여전히 그는 작품 활동 중이기에 그의 작품도 계속 읽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의 작품의 대부분의 배경인 센다이가 내가 가장 여행으로 가보고 싶은 일본 지역이 되었을까.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아무리 B급이 되었다 할지라도 전부 찾아 보고야 말았다! 만화책 버전의 <마왕>은 도저히 참아줄 수 없어서 중도포기했지만...)
그런 나에게 '이사카 코타로 내한'은 정말 어마어마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YES 24에서 진행한 이벤트 참가 신청을 하였고 정말 감동적인 문자를 받았으며, 그래서 바로 어제(6월 19일 화요일) 이벤트에 다녀왔다.
행사 내내 작가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 촬영이 금지되어서, 내가 남길 수 있는 사진은 이게 전부였다. 운이 좋게도 행사장 내부 동영상을 찍다가 대기실에서 대기 중인 이사카 코타로의 모습이 2초 정도 담기긴 했는데,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한 만큼 개인 소장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사는 총 2부로 구성이 되었는데, 1부는 <여름밤의 북토크>로 이사카 코타로와 문학평론가 한 분이 좌담회 식으로 질문 답변을 하며 진행이 되었다. 이사카 코타로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정말 많은 수의 팬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며, 마치 도망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 참 순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물론 그의 얼굴을 미디어에서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역시 실물을 보는 게 너무나 남달랐다.
놀라운 것은 관객들 대부분이 일본어 능력자였던 모양인지, 통역하시는 분의 통역 없이 이사카 코타로의 답변만 듣고도 웃는 등의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나도 알아듣는 부분 조금은 있었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2부에서는 바로 기다리던 사인회였는데, 사인회 한다고 하자마자 사람들이 번개처럼 달려가 줄을 서는 모습에 나도 기함을 토할 정도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너무 떨려서 눈물이 날 정도였는데, 통역사 분의 도움을 받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가 있었던 것이 좋았다. 그리고 악수를 청했는데 흔쾌히 악수도 해 주셔서, 아 이게 정말 10년 덕질의 완성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의미로 한국에 이렇게 많은 팬이 있다는 것을 잊고 (기억하고 있으면 부담이 되기 때문에)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고 말했던 그의 말이, 앞으로 나의 덕질 역시 오래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해 주는 말 같아서 어쩐지 행복해졌다.
언제고 다시 한국에 내한하는 이벤트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다시 만나볼 기회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생의 빅 이벤트가 되겠지?
Copyright. 2018.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
브런치에 쓴 이사카 코타로 북리뷰 리스트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https://brunch.co.kr/@kimraina/16
화이트 래빗 https://brunch.co.kr/@kimraina/122
캡틴 선더볼트 https://brunch.co.kr/@kimraina/168
러시 라이프 https://brunch.co.kr/@kimraina/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