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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May 16. 2018

저는 양성애자입니다.

Yes, I am bisexual.

고등학생 때였나,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꿈에서는 학교 선배가 등장했고, 꽤 강렬한 마무리를 지으며 끝났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 동안 심장이 벌렁거려서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여성에게도 성적 이끌림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혼란스러웠냐고? 전혀. 아, 역시 나는 양성애자, 바이섹슈얼이구나, 하고 단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꿈을 꾸기 이전에도 나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누구에게든 내가 성적 끌림을 느낄 수 있고, 결코 성별이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른바  준비된 퀴어였다고 할까. 덕분에 나는 클리셰 가득한 게이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고민들 바깥에서 여유로울 수 있었다.


모든 퀴어가 나처럼 운이 좋지는 않다. 아직도 세상에는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비관해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많고, 최근 한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또' 발생하였다. ("사람을 좋아한 것밖에 없는데..." 한 여고생의 죽음 - 오마이뉴스)

이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 이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뉴스 기사에도 지적했듯이, 사회적으로 이미 동성애는 죄악시되어 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기란 누구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면서, 그 사람이 벼랑 너머로 몸을 던졌다고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언급했듯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는 것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내 친구들에게 퀴어에 대해 편견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나의 편에 서 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커밍아웃이란, 자신의 성지향성이나 성정체성을 스스로 밝히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이 성지향성이나 성정체성을 밝히는 것 '아웃팅'과는 완전히 다른, 온전히 자신만의 주체적인 결정과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섹슈얼이라고 가장 친구들에게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가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 꿈을 꾼 직후 언제 가였을 것이다. 고민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알려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나 사실 양성애자야. 그리고 지금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 그리고 내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걸 이제 알았어?"

우스개소리긴 하지만,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어서였는지, 내가 이미 여성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낀다는 것을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고, 다만 내가 스스로 정체화 하기를 기다려 주었다고 하면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겠지.


바이섹슈얼로 커밍아웃하고 나서 겪었던 무례하고 불쾌한 경험들을 적어 내리 자면, 아마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위의 첨부된 영상으로 내 답변을 조금이나마 대신하고 싶다. (수낫수 퀴어 컨텐츠 영상에 바이섹슈얼로 출연한 적이 있긴 하지만 위 영상은 아니다.)


나는 부모님에게는 커밍아웃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할 생각이 없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바이섹슈얼인 것을 알지만 부모님께는 알릴 계획이 없다. 내 부모님 이외에 나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내가 커밍아웃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친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그 사람에게는 커밍아웃하는 것을 까먹은 사람들뿐일 것이다.

이런 나에게도 커밍아웃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게이나 레즈비언은 괜찮은데 양성애자는 좀 그렇지 않아?" 뭐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의 혐오 발언이긴 하지만. 퀴어에 관해 혐오발언을 의식 중이든 무의식 중의 든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커밍아웃을 꺼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멀어진다. 우리는 아무래도 영원히 친해질 수 없는 사이인 것 같네요.


말하자면 나는 오픈리 퀴어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웃팅을 달가워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정체성을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는 것에 거리낌은 전혀 없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이 나의 정체성을 밝혀주고 다닌다면, 결코 유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상황은 혐오보다는 예의의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양성애자, 바이섹슈얼 : 남녀 양성에 대하여 성적인 관심과 매력을 느끼는 사람. (성적으로) 남녀에게 다 끌리는.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영어사전)

*퀴어 :  "이상한", "색다른" 등을 나타내는 단어였지만, 현재는 성소수자 (레즈비언 · 게이 ·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오픈리 퀴어 : 자신의 성정체성 및 성지향성을 커밍아웃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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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퀴어 컨텐츠 글이 자연스럽게 종종 올라올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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