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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May 10. 2018

3분 4초 같았던 3박 4일

제 2 회 아리랑힐 세계 선수권 대회, 서포터즈 활동

https://youtu.be/KsuibI7nR8g

아리랑힐 서포터즈 황씨의 동영상


5월 4일부터 6일까지 총 2박 3일 동안 강원도 정선에서 롱보드 다운힐 대회가 열렸다. 서포터즈로 행사에 참여했는데, 행사 준비로 인해 하루 일찍 행사장에 도착해 총 3박 4일(사실은 3박 5일!)을 강원도 정선에서 보냈다.

간략하게 대회는 4일 - 연습 경기 및 예선전, 5일 - 연습 경기 및 본선, 그리고 6일 마지막 날 결승전을 치르는 일정으로 진행되었고, 동시에 정선 화암동굴 인근에서는 문화 행사 부스가 마련되어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이루어졌다. 매일 밤마다 화암동굴 인근의 캠프 사이트에서 뮤직 페스티벌이 이어졌다.

빛나는 진행요원 명찰

처음 '서포터즈'나 '자원봉사'로 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래도 갓 대학생이 되어 활동 범위가 넓어진 스무 살 언저리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대학교에 다닐 때는 꽤 많은 행사들을 쫓아다니며 '자봉단'이니 '서포터즈'니 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내던져진 후에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이 먹고' 마땅한 직업 없이 대외활동하는 것처럼 여겨질까 봐 걱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대학생 신분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런 기회조차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스스로도 이런 행사에 내가 감히 참여해도 될까, 하고 위축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런 경험의 기회를 앞으로 살면서 내가 얼마나 더 잡을 수 있을까? 살면서 수많은 기회들이 지나가겠지만, 아마 한 번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살다 보니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만 29세,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하는 마지막 자원봉사 대외활동이었다.

안전한 경기를 위해 열일한 깃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취미 활동을, 이 대회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연계시킨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 종목은 달랐지만, 선수들이 높은 언덕에서 빠른 속도로 활강하듯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우와" 소리 말고는 나오질 않았다.

내가 그 선수들처럼 다운힐을 하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타는 스케이트보드를 더 열심히 연습하고 싶다는 욕심을 생기게 하기엔 충분했다.


행사 진행 자체에는 조금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을 배려하지 못한 주최즉들의 모습도 곳곳에 있었지만, 아직 겨우 2회 차 대회인 것을 감안하면 행사 참가자들 (선수를 제외하고) 전원 사고 없이 즐기면서 마칠 수 있었던 것으로도 그 역할을 다 하지 않았나 싶었다. 내년에는 더 발전한 행사가 되겠지.


결승이 끝난 날 밤에는 가장 큰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곳에서 경주 승자들의 시상식 및 우승 세레머니도 볼 수 있었다. 선수들과 행사 진행요원들 모두 하나가 되어 신나게 뛰어노는 시간이 되었다.

여성부 수상자 (왼쪽부터) 3등 리드 / 시상식 진행요원 / 1등 에밀리 / 2등 제니
오픈경기 수상자들
이번 대회 수상자들

많은 선수들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두 명이다. 아쉽게도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는 못했지만, 대회 내내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있던 미국인 선수 레이첼과, 괴물 같은 능력으로 여성부 1등, OPEN 경기에 2등을 차지하며 2관왕을 달성한 에밀리.

웃는 얼굴이 예쁜 레이첼

레이첼은 경기 첫날 연습 때 곧잘 하다가 막상 시작된 예선전에서 실수를 하여 바로 내가 서 있는 트랙 쪽에서 미끄러져 굴렀다. 트랙 바깥에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짚단 깊숙이 파고 들 정도로 크게 넘어졌는데도, 아픈 기색 없이 곧장 일어나 (작은 목소리로 Oh, shit! 하고 소리치긴 했지만.) 다시 경기에 임했다. 이 과정에서 단 한 번도 표정을 찌푸리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R이 활주 하며 내려올 때는 시선을 뗄 수가 없게 되었다. 헬멧 안쪽의 표정은 연신 미소였다. 바람을 느끼며 신난 듯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에밀리에 대해서는 다른 서포터즈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더욱 기억에 남게 되었다. 사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인 차이 때문에 아무리 스포츠에 뛰어난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고만고만하게 잘 하는 남성보다는 못하다고 한다. 특히나 다운힐 종목에서는. 가령 남자 여자 섞어서 각 50명씩 다운힐 경기를 하면 아무리 잘 하는 여자 선수라도 열 손가락에 꼽히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E는 여성부에서 1등을 한 것도 모자라 남녀 구분 없이 펼쳐진 OPEN 경기에서 2등을 했으니, 가히 괴물 같다고 할 만했다. 평소에 E는 남자들에게 지는 것을 싫어해 150kg 데드리프트로 체력단련을 한단 얘길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아 "150파운드 아니구요?(150lb=약 70kg, 이것도 어마어마 한 무게이지만)" 하고 기함을 토했다.

내년에도 아리랑힐 서포터즈를 할 거냐고 물으면, 기회가 되는 한 하겠다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할 것이다.

사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행사를 함께 고생하며 만들어낸 동료 서포터즈들 때문에 그런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것 같다. 같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밤에 모여 어땠는지 이야기 나누고, 뮤직 페스티벌에선 신나게 춤추고. 이 모든 추억들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마치 3분 4초처럼 흘렀던 3박 4일의 짧은 일정을 함께 해준 좋은 동료들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이 시간은 값지게 남았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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