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중의 흰토끼는 달린다.
화이트래빗
이사카 코타로
Yes24에서는 관심 작가를 설정해두면 작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메일로 알람을 보내준다. 나의 관심작가 1순위는 '이사카 코타로' 이고 이 작품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메일로 받자마자 구매를 했다. 3일만에 책이 도착했고,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결론을 말하자면, '역시 이사카 코타로!'하고 소리를 내지르는 작품이었다. 이 짜릿한 맛에 이 사람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신이 있다면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함께 읽으며 흐뭇해할 것만 같다.
이사카 코타로에 대한 나의 애정은 이전의 그의 작품 리뷰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찬양은 이만 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이야기는 단순히, 유괴를 직업으로 삼는 우사기타(심지어 이름도 토끼다! 토끼를 일본어로 하면 우사기.)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유괴 조직이 그의 아내를 유괴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해 버리고, 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조직의 요구에 응하며, 조직 대신 '오리오'라는 남자를 찾아 헤매는데,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많은 상황들에 맞딱뜨리며 자꾸만 위기에 처한다.
반전이 묘미라고 할 수 있으니까, 나온지 얼마 안 된 신간의 재미를 해치는 스포일러는 최대한 하지 않는 선에서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면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사카 코타로가 그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독특한 방식의 서술이 꽤 끌렸다. 그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완벽하게 이용하면서, 사건 전체를 관망하는 듯 보여주었다가도 사건의 전말을 전혀 모르겟다는 듯 나몰라라 내지르기도 했다. 그 기술들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으며, 독자를 미로에 던져 넣는 악마의 속삭임이 되었다.
소설을 관통하는 컨셉은 책 초반에 소개가 되는, 흰토끼와 레 미제라블, 밤과 오리온자리이다. 책을 다 덮고 나면 미로 처럼 생긴 토끼 굴을, 작가가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막다른 곳에 헤딩도 하다가 영 낯설은 출구로 얼굴을 들이미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되돌아 온 길을 짚으려고 해도 아마 다시 잃고 헤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냥 높은 곳에서 한 눈에 꿰뚫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책을, 특히 번역서를 읽고 나서 역자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사카 코타로 작품을 번역한 역자를 대부분 알고 있는데, 처음 보는 이름이라 낯설다 싶었더니 역자의 말을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는 나와 같은 이사카 코타로의 팬이었고, 일본 문학 번역에 발을 담그며 그의 작품을 번역하고 싶어했는데 10년 만에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성공한 덕후! 내가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고등학생 때 처음 접했는데, 그 때부터 일본 문학 번역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 준비했다면 지금쯤 이사카 코타로와 일본어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희망사항)
출간 예정인 그의 새 작품 '서브머린'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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