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킬러의 이야기
이사카 코타로의 신간 <악스 AX>의 출간과 더불어 그의 내한 및 사인회가 있었다. 십 년 넘게 덕질 한 독자의 입장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고, 실물을 영접하고 악수까지 했는데 그의 이번 작품 읽는 것은 힘들었다. 아니, 사실은 그의 신간이 출간될 때마다 항상 힘들었다. 이 이야기를 다 읽으면 대체 언제 또 그의 신간을 읽을 수 있는 거야? 좋은 이야기들을 아끼고 아껴 읽고 싶은 마음과 한 시라도 빨리 다 읽고 감상에 젖어들고 싶다는 두 가지 양립할 수 없는 마음들이 매 순간마다 싸웠다.
그래서 <악스 AX>는 조금 긴 호흡으로 읽었다. 작가와의 좌담회에서 그가 <악스 AX>를 어떻게 쓰고 완성했는지를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이 나서 나도 그렇게 읽었다. 앞의 세 편은 빠르게, 뒤의 두 편은 공들여 천천히.
<악스 AX>는 총 다섯 가지의 떨어진 듯 이어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단편인 듯하면서도 장편인 것 같은 기묘한 구성이다.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 <사신 치바>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섯 가지 단편이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퍼즐처럼 조각이 짜 맞춰지는 그 느낌은 그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주인공 '풍뎅이'는 굉장히 실력이 좋은 킬러이다. 아내와 하나뿐인 아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풍뎅이 또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냉혈한 킬러 풍뎅이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그는 아내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랑하고 있다고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아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눈치 보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결코 아내가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암흑세계에 있던 그는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잘 몰랐고, 그래서 아내와의 관계 역시 그에게는 어려운 것이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진 것뿐.
아내를 향한 사랑뿐만 아니라 아들을 향한 사랑 역시도 다분히 느껴졌다. 킬러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들에게 올바른 교훈을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그에게도 '공정하라'는 삶의 모토만큼은 조언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무방비 상태의 상대방을 바로 암살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깨워서 '공정한' 결투를 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모숩을 보였을까.
이야기는 어쩐지 전체적으로 회색 지대를 걷는 느낌으로 진행이 된다. 풍뎅이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처럼, 그가 몸 담고 있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양면을 번갈아 보여주며 세상은 이런 것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P. 287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며 체험할 무서운 것, 불합리한 것으로부터 내가 지켜 주고 싶다, 지켜 보이겠다고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다. 물론 그런 한편으로, 살아가면서 무서운 것이나 괴로운 것을 피해 갈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안다.
힘내라. 속으로 아들에게 응원을 보내다가 나도 아직 힘내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싶어 쓰게 웃고 만다.
킬러의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내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남편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공정하게' 나타나는 이야기였다.
한동안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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