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주변화 된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
아들은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도록 자라지만, 딸은 그의 아버지를 증오하도록 자란다.
요컨대 이런 말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찬 아들은 어머니를 이상적인 아내상으로 그리지만, 딸은 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없는 남편을 찾고자 (혹은 결혼을 하지 않고자) 한다. 아들과 딸에게 최초의 이성(異姓)이란 각자의 부모인데, 가부장적인 가정 속에서 부모의 역할은 각자 다르게 나타난다. 아들에게 어머니는 가족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고, 그래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지는 반면에, 딸에게 아버지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며, 성차별을 가정 속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하여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도 경쟁자로 여겨 어머니를 혹은 어머니와 비슷한 여성을 사랑하도록 자라나고, 딸은 어머니를 동정하지만 그와 다른 삶을 꿈꾸고 싶어 하고 아버지를 또는 아버지와 비슷한 남성을 증오하도록 자랐다.
나는 평생을 가부장 가정에서 '딸'로 자라서인지 오이디푸스의 부친 살해와 모친과의 동침 이야기는 너무나도 생경했다.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기는 아들,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 프로이트는 이를 모든 남자가 품고 있는 잠재적 욕망이라 해석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현대의 가부장 사회에서도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현실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여성 혐오적인 관점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남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서사에 아버지에 대한 동경,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빼면 스토리 진행이 어려운 지경이다.
오르한 파묵의 '빨강머리 여인'이라는 책에 대한 설명도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부터 시작했다. 아버지의 부재, 그 와중에 우물 파는 마흐무트 우스타를 도우며 그를 아버지로 여기지만 결국엔 다친 그를 내버려두고 도망치는 소년, 젬의 이야기이다. 젬은 자라면서 오이디푸스 이야기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그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내 아이쉐와의 후사가 없자 건설회사를 세우고 아들로 여겼는데, 어린 시절의 딱 하룻밤을 통해 태어난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그 아들에게 사로잡힌다.
젬은 서양의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동양의 쉬흐랍과 뤼스템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부친 살해와 자식살해 속 비슷한 점들을 짚어낸다. 두 이야기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달라졌을 뿐 많은 점들이 닮아 있었다. 특히 부자간의 서로의 얼굴을 몰랐다는 점이 죄질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면죄부로 주어진다는 점을 하나로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젬의 이야기는 이 둘 중, 오이디푸스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빨강머리 여인에게 매혹되어서 자신이 아버지라고 여기던 마흐무트 우스타를 죽음의 위기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이 빨강머리 여인, 귈지한은 또 다른 비밀을 품고 있는데 (이는 책을 읽고 직접 확인하며 더 좋을 것 같다!) 훗날 귈지한은 젬의 아들을 데리고 다시 등장한다.
시종일관 젬의 시점에서 진행되던 이야기가 3부에 넘어가서는 귈지한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귈지한은 젬의 이야기에서 철저한 '주변부'의 사람이었지만, 사실은 젬의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나가던 하나의 큰 '운명'이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라는 예언을 피하지 못한 것처럼, 젬 역시도 그에게 닥친 운명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젬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귈지한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끝내는 그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버린다.
주변부에서 태어나 주변부로 자란 딸은 어머니가 됨으로써 비로소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고전 속에 (사실은 의외로 현대의 이야기까지도) 남성의 서사는 지겹도록 많지만, 여성의 서사는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 성녀 - 혹은 타인을 악으로 물들이는 창녀와 같은 모습 이외의 여성 서사를 찾아보기란 꽤 쉽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성녀인 줄 알았지만 창녀였던 여성의 이야기가 이제까지 여성의 이야기 전부였다. 결국 중심적인 역할은 남성들에게 넘겨주고 주변부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오르한 파묵의 '빨강머리 여인' 역시도 이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만 3부에서 귈지한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며, 단순히 성녀-창녀로 구분될 수 없는 여성의 모습을 (비록 성녀에 좀 치우친 이야기긴 했지만) 보여주어 주변부에서 조금은 중심으로 옮겨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했다.
오르한 파묵은 2006년 터키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문학계 미투 이후 노벨 문학상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과거 수상자들의 명성까지 떨어뜨릴 수는 없던 모양이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이번 기회에 처음 읽었는데, 터키의 고전과 그리스의 고전을 잘 버무려서 이야기를 진행한 지점이 흥미로웠다. 터키, 이스탄불이 세월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정교하게 그려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어쩐지 그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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