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
김상현
<긴급구조 119>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릴 적에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짧고 강렬한 그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며 가슴 졸였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도 '119 구조대~'하는 음악이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은 이 프로그램은, 실화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재연을 하기도 하고 실제 출동한 소방관의 인터뷰 내용이 포함하기도 하며, 출동 당시의 영상을 덧붙여 사실감을 더했다.
조금 어릴 적에는, 누구나 이 프로그램을 보며 '소방관' 내지는 '119 구급대원'을 한 번쯤을 꿈꿔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방관은 아직 국가직도 아니고, 고강도의 노동은 차치하고서라도 본래 해야 할 일들 외에도 어처구니없는 민원인의 '진상'에 시달리고 있으며, 심지어 *소방장비 마저 자비로 구입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울분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 세계의 '영웅'이라고 칭송하며 아무도 대우해주지 않는 현실에, 과연 과거 <긴급구조 119>를 보고 자란 세대들만큼, 아니 현실은 그 세대들조차도 소방관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브런치에서 <스무 살 새내기 소방관의 일기> 였던가, 하는 제목으로 연재되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소방관의 일기라는 것 이외에 '스무 살 소방관'이라는 타이틀이 제일 끌려서 구독을 시작했다. 스무 살에 소방관이 되다니, 정말 어릴 적부터 소방관이 꿈이었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소방관이 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구독을 하기 이미 전부터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수상한 매거진이었는데 매 에피소드마다 읽기 쉬운 문장으로 출동하며 겪었던 이야기와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읽는 내대 <긴급구조 119>라는 프로그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매거진은 최근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종이책으로 출간이 되었다. **작가의 브런치에서 진행한 출간 이벤트에 우연히 당첨되어 책을 받게 되었는데, 실은 주소를 이메일로 보냈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터라 책을 배송받은 날엔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종이책은 매거진에 연재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 그대로 담겨 있었다. 종이책이라 좋은 점은 내가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또한 스크린으로 읽을 때보다는 감정의 깊이가 더 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P.54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소방관의 비율은 일반인의 8배에 달한다고 한다.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기 힘든 데에는 이유가 여럿 있다. 상담과 치료는 기록에 남아 인사에 악영향을 준다. 이를 감수하고 상담을 받으려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엔 소방병원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자살한 소방관은 47명. 그들은 소방관이기 전에,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였다. 소방관만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다. 감사와 격려의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뉴스나 신문 기사에 나열된 사실들을 읽는 것보다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를 읽는 것은, 같은 현실을 묘사하더라도 깊이감이 다르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덮고 나니까,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느끼는 바는 분명 다르겠지만, 소방관을 바라보는 눈은 다들 비슷해질 것 같다. 국민들이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 1위이면서 동시에 직업 만족도 1위를 위해, 주변의 소방관들을 위하고 격려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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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소방관 10명 중 4명, 소방장비 자비로 구매' http://www.edaily.co.kr/news/news_detail.asp?newsId=02896246609502416&mediaCodeNo=257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 브런치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