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무난한 이야기, 다소 무난한 주인공, 너무 매력적인 조연들
블랙 팬서에 대한 혹평은 그냥 검색창에 '블랙 팬서'라고 찾아보기만 해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나올 것이다. 혹은 반대로 블랙 팬서의 재미있는 요소 역시 찾아보면 분명 많겠지. 그냥 단순히 블랙 팬서를 재미있게 본 마블의 팬으로 적당한 감상을 써보고 싶다.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새로운 영웅 '블랙 팬서'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처음 등장한다. UN 국제회의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아프리카에 있는 가상의 국가 '와칸다'의 국왕이 사망하여 그의 아들 티찰라가 왕위를 이어받고 깜짝 등장해, 다음 마블의 이야기는 분명 블랙 팬서일 것이다, 라는 암시를 주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기대를 안고 2018년 2월 <블랙 팬서>가 개봉을 했다.
기존의 MCU에서 보여주었던 화려한 액션씬들과 영웅들이 가지는 본인의 힘과 균형에 대한 고뇌적인 측면은 <블랙 팬서>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그냥 대체적으로 무난한 스토리에 무난한 주인공의 고민과 무난한 결말이었다고나 할까.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등장에 충분히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주인공 티찰라가 아니었을 뿐이지만.
주인공 티찰라의 역할은 영화 전반에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국왕-아버지의 사망에 왕위를 이어받고, 왕위 계승식에서 작은 트러블이 있었지만 무사히 왕위를 계승하여 왕이 되었고, 비브라늄을 훔쳤던 클로를 잡지 못하고, 아버지의 과오로 등장하게 된 사촌동생 '킬몽거'의 등장에 죽었다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나 다시 왕위를 되돌려 받는다. 그리고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어서인지 와칸다의 자원을 이용해 약자들을 돕겠다고 선언을 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고, 다만 약자들을 돕고 싶지만 동시에 와칸다를 숨기고 싶은 마음의 작은 갈등이 있다. 결국 킬몽거의 등장에 약자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커져서 국제 세계에 존재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으로 치면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라고는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왕위 계승식 때 웃통을 벗고 나타났을 때를 빼면, 그에게 집중할 만한 스토리는 그다지 없어 보인다. 이 부분이 마블의 영웅 치고는 너무 '무난하다'
반면에 그와 대립하는 킬몽거는, 존재 자체부터가 와칸다에서도 지워지고, 그가 자라온 세계에서도 많은 차별을 몸소 체험하며 입체적인 인물이 된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가, 그의 동포들이 받았던 차별들을 똑같이 되돌려 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와칸다의 비브라늄이 필요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클로와 손을 잡았다가 그를 살해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티찰라와 킬몽거의 대화를 듣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였다. 킬몽거는 와칸다 어를 전혀 할 줄 모르고 미국의 흑인 영어를 사용한다. 티찰라는 와칸다 식 영어를 사용을 하는데, 이들의 발음이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서 그들의 언어가 각자의 인생을 잘 드러내 주었던 것 같다.
킬몽거는 티찰라를 죽이고 (티차카가 살아있었다면 그가 대상이었겠지만) 왕위를 계승하여 비브라늄을 무기화하여 자신들을 억압했던 이들에게 똑같이 되갚아주기 위해 삶을 살아 왔다. 그런 그에게 매료되어 찬동하는 와칸다 부족들도 있었지만, 결국 티찰라에게 패배하여 죽임을 당한다. 노예로 사느니 죽는게 낫겠다고 말을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도 어쨌든 동포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블랙 팬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가장 매력이 있었던 캐릭터는 다언컨데, 장군 '오코예'와 스파이 '나키아' 그리고 티찰라의 여동생이자 과학자인 '슈리' 였을 것이다. 자기 주도적이고 상황을 리드할 수 있으며 위기 상황에 해결책을 도모하는 모습들이, 자신에게 닥치는 일만 해결하기 급급한 티찰라의 모습과는 대비가 되었다. 이들 캐릭터들 하나하나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MCU는 이번 영화로 인종의 다양성에 대한 이슈를 영화적으로 꺼내왔다. 매력적인 흑인 캐릭터들의 다채로운 색깔들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 1세계를 우러러 보기 바빴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새로운 환기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닐 수도 있고.)
앞으로의 MCU에서는 성별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블랙 위도우의 팬의 한 사람으로, 그녀에 대한 싱글 무비가 먼저 만들어지면 가장 좋겠지만, 다양한 '여성 영웅'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단지 주변인으로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고뇌하고 사투하고 또 실수도 하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여성 영웅 캐릭터의 이야기를 앞으로는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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