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

by 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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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평범한 아저씨는 이상한 약숫물을 마시고 염력을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된다. 한편, 그가 버리고 간 딸은 장성하여 치킨집의 사장님이 되었으나 재개발로 인한 철거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용역들과의 시비 끝에 어머니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제야 10년 만에 아버지와 조우한다. 아버지와 딸은 몇 가지 갈등을 빚지만, 결국 아버지의 부성이 딸을 위험에서 구출해 내고 철거민들의 영웅이 된다.

아마 영화 <부산행>을 본 사람들은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초능력이다'라는 캐치프라이즈로, 한국형 히어로가 등장하는 것인가? 하며 기대를 부풀렸을 것이다. 뭐, 그런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는 어쩌면 실망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평점이 썩 높지 않은 것을 보니.)


원래 공상과학 관련한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예고편이 흥미로웠기도 해서 나는 막연히 "재밌겠다."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대단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능력을 쓰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것도 그냥 아저씨. 어마어마한 히어로가 등장했다는 것까지 연결되진 않더라도, 아 어쩌다 초능력이 생긴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위기를 겪고 성장하는 이야기인가 보다, 정도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는 맞았다. 영화의 첫 장면이 용역과 철거민의 대치에서 시작했다는 점만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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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라고는 예고편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명동 재개발구역에서 철거민들과 연대하여 용역들과 대치했던 뜨거운 여름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어렸고, 불의에 맞서려고 하였으며,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자 노력했고, 타인의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지금의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만큼의 행동력은 사라진 것 같다. 그 여름의 그 사건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영화 <염력>은 명동 재개발구역의 사건보다는, 용산참사의 오마주였다. 영화를 보다 보면 특수기동대가 컨테이너 박스에 타서 건물 옥상에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약자를 향해 휘두르는 공권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용역들이 등장하여 비무장 상태인 철거민들에게 폭력을 가하지만 경찰들은 철거민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 이 현실을 내가 직접 목도한 적이 없었다면, 이것은 영화적인 클라이막스를 가미하기 위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토리적으로나 영화적으로 <염력>은 연상호 감독의 전작인 <부산행>에 미치지 못한다. <부산행>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염력>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영화였을 것이다. 빈약한 스토리라인에, 사실상 크게 와 닿지 않는 초능력, 그리고 어설픈 진행방식 등등. 엉망인 지점들을 꼽자면 정말 여러 가지가 튀어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염력>이라는 영화는 용산참사를 향한 "염원"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희생자들 중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던 간절한 염원. 약자를 향한 측은지심.
주인공은 뒤늦게라도 딸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려고 하는 부성애가 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너무 전형적이고 진부하다. 그런 그가 철거민들을 도운 이유도 단순하다. 딸을 구하기 위해서. 설령 그럴지라도 나는 이 영화에서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사람을 향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딸을 구하기 위해서. 딸이 아끼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딸이 구하려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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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평면적인 인물들을 선악으로 나누어 단순 대결구도를 만들었던 것은 매우 아쉽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정유미가 맡은 '홍상무' 역할은 너무나도 강하고 악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에 대치하는 심은경이 맡은 '신루미'는 한없이 약하고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영화적 장치였다고는 하나 단순한 이분법 구분 역시 이 영화의 아쉬운 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기존에 해왔던 캐릭터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홍상무 역할의 정유미의 연기 변신은 눈에 들어올 만했다.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잔인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 모습을 보면, 이때까지 선하고 당차던 역할만 해왔던 정유미의 이미지와 정반대로 느껴져서 어색해질 법도 한데, 너무나도 잘 소화해냈다. 정유미의 연기 변신 아닌 변신은 관람 포인트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2009년 용산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이 영화는 영화 외적으로 의미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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