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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ug 14. 2018

공작

총소리 한 번 없어도 첩보영화가 완성된다.

https://youtu.be/DrOaXbeN-AE

공작


2005년,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합작 광고가 만들어졌다. 남한의 이효리와 북한의 무용수 조명애가 등장해 손을 잡고 웃으며 걷는다. 이 시절의 광고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고, 사실 이런 광고를 봤는지조차 기억에도 없다. 내 기억에는 2000년 무렵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남북정상회담과 그 이후 이어진 통일 직전의 분위기만이 선명했다. 마치 지난 4월에 있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따스한 통일의 바람처럼.

내가 재학 중이었던 중학교는 시도 교육청에서 지정한 '통일 시범학교'로 운영이 되었다. 거창한 건 아닌데, 학교 재량껏 수업을 꾸릴 수 있던, '창의/재량'시간에 통일 관련한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남북이 전쟁을 하게 된 경위에서부터, 경과와 휴전까지 이어진 현재의 모습, 그리고 통일의 당위성 같은 것들을 공부했고, 때때로 통일염원 글짓기나 표어 그리기, 통일 상상 그리기 같은 행사도 진행되었다. 이 일련의 교과과정 덕분인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당연한 숙원처럼 여기며 자랐다.

고등학생이 되었고, 각기 다른 중학교 출신의 친구들을 만났고, 대학교를 갔더니 다른 지역 출신의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 중 의외로 많은 수가 통일의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통 다른 나라에서 자란 사람들 같이 느껴졌다.

영화 <공작>은 '흑금성'이라는 대북 공작원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해 만든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떤 부분은 픽션 일 지를 골몰하며 보았다. 이미 영화적 픽션과 실제 사건을 비교한 사람들의 글이 많아서, 참고해 읽어보고 영화 내용을 다시 복기했다.

실제 흑금성 사건에 대해서는 <신동아> 2002년 11월 호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보통 첩보영화, 하면 최근에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시리즈나, <007> 시리즈 같은 다양한 전투와 총격씬, 액션이 나오는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남북 간의 긴장감을 소재로 한 한국의 또 다른 첩보 영화 <베를린> 역시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시원한 총격전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공작>은 전혀 다른 종류의 첩보영화였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 어떤 전투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흐름을 보여주었다.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도가 엄청났다. 인물들 간의 미묘한 힘 겨루기와 사건의 진행에 따른 밀고 당기기가 적절하게 펼쳐져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것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때에 10대를 보낸 나에게는 조금 낯설면서도 언뜻 본 것과 같은 익숙한 분위기였다. 글쎄, 이보다 더 어린 세대들 혹은 통일에 회의적인 세대들에게도 이와 같은 몰입도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배우들의 연기는 단연코 몰입도에 시너지 효과를 주는 방식으로 작용되었다. 황정민이 맡은 '박석영'은 대북 공작원이지만, 북한 고위 인사들에게는 철저한 장사치로의 연기를 해냈다. 정말 국민과 국가를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 조직의 명령에 그냥 따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는 그야말로 스파이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조직의 명령을 따르는 개체가 되어야 하는지, 조직이 희구하는 바를 향해 스스로의 결정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향은 너무도 '박석영'의 선택처럼 느껴졌다.


북 고위간부, 리명운 처장(이성민 분), 정무택(주지훈 분) 그리고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 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의 신념이 충돌하며 갈등을 일으켰고 이는 바로 영화의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영화적 긴장감 넘치는 요소들이 더해지긴 했지만, 이 사건들이 실제 있던 상황들을 반영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스파이 역할을 맡은 '흑금성'의 삶은 얼마나 위태했는지 감히 짐작하기 두려운 정도였다. 

이효리가 카메오로 등장해, 2005년 광고 촬영 당시의 본인 자신을 연기하는 장면도 (재미있으면서도) 뭉클했다.


통일의 새 바람이 정말로 불고 있는 것인지, 내 생애에 남과 북이 통일하는 것을 정말로 볼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 때는 통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이바지하고 싶다는 꿈을 꾼 적도 있는 10대 소녀가 현실의 쓴맛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영화였다. 그렇지만 화합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결국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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