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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Dec 26. 2018

아쿠아맨

조악한 짜집기, 실패한 서사, 그렇지만 영상미에 집중해본다.

아쿠아맨


단언컨대 아쿠아맨은 내가 가장 사랑할 뻔 한 히어로 영화였다. 원래 히어로물을 좋아했고 (DC와 마블을 섭렵하며!) 다양한 해양 생물들과 아름다운 해저를 누비는 영웅을 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나에겐 최고의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만으로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쿠아맨은 실패한 여러 DC 영화들을 답습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바닷속에 사는 인류, 아틀란티스인들의 여왕, 아틀라나와 땅의 평범한 등대지기 톰 사이에서 태어난 '아서'는 여러가지 시련을 딛고 바다의 제왕으로 등극한다. 예사롭지 않은 탄생과 유년 시절의 작은 시련들을 지나 성인이 된 아서가 끝끝내 고대 아틀란 왕의 유물인 삼지창을 획득하여 '오션 마스터'가 되는 과정은 여느 영웅들의 서사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고루한 영웅 서사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조악한 짜집기

형제의 싸움, 진정한 혈통 다툼을 다루는 영웅 서사는 정말이지 지겹도록 많이 봤다. 최근에는 영화 <블랙 팬서>에서도 누가 진정한 왕이 되어야 하는가를 두고 두 형제(사촌지간이지만!)의 결투가 있었다. 예상하듯이 처음에는 주인공이 지는 듯 하다가 - 도망쳐서 - 역전할 만한 힘을 길러서 - 다시 돌아와 격퇴한다. <아쿠아맨>에서도 똑같이 진행이 되었다.

뭐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아쿠아맨>을 보면서 영화 <토르>의 토르가 많이 생각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 세계의 통치자가 되는 것을 두고 다투는 형제들(토르-로키) 그리고 조금 모자란 듯 보이는 형!

토르를 따라하듯 아서는 조금 아둔하지만 우직하고, 정의를 수호하려 애쓰면서 건강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계획 없이 무대포로 적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토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있다. 주인공의 이름에서도 짐작하듯, 킹 아서 이야기도 섞여 있다. 아틀란 왕의 유물인 전설의 삼지창은 그 누구도 뽑아본 적이 없는 엑스칼리버와 같았다.

수족관에서 해양 생물들과 대화를 나누던 소년 아서를 보면서, 동물원에서 뱀과 대화하던 해리 포터를 떠올린 건 과연 나 뿐이었을까?

그것과 별개로 이 장면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실패한 서사

아서의 어머니는 아틀라나 여왕이다. 아버지는 평범한 인간, 등대지기 톰이다. 아틀라나 여왕이 정략결혼으로부터 도망쳐나왔다는 사실은 여성의 주도적인 자기 결정권을 언뜻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정략결혼을 피해 자신의 나라 밖으로, 자신의 세계 밖으로 도망친 여성이 단지 처음 본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린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알에서 갓 나온 새처럼 처음 본 사람을 어미마냥 쫓는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 나온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서사다.

단지 정략결혼 상대가 싫어서 도망쳤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내와의 결혼은 요즘 세상에 별다른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여왕이라며! 그렇게 능력있는 사람이 다른 사내와의 결혼을 도피처로 삼을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지.) 

아서의 서사 역시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해저 세계와 지상을 잇는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자랐지만, 해적들로부터 약탈 당할 뻔한 잠수함을 왜 구해준건지 (우연히? 정말로?) 그러면서 악당 아버지는 대체 왜 그대로 내버려 둔건지, 곳곳이 너무 허술했다.

주인공을 어떻게든 왕으로, 오션 마스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많은 부분을 놓쳤다고 밖엔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서의 조력자이자 영화의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는 메라의 서사 역시, 아쉬움 투성이다. 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아서를 돕는 조연에 그친다. 메라에게도 분명 본인의 정략혼 상대인 옴이 아니라 아서를 왕으로 추대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테지만, 영화상에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히 그게 옳은 일이라서? 정략혼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탐탁치 않은 추측만 남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미

예전에는 영화를 볼 때, 바닷속으로 극중 인물이 잠수해 들어가거나 해저 세계를 탐험하면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곤 했다. 이 영화에서는 극중 인물들이 바닷속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녀서인지 해저 세계를 유영할 때에도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다른 의미로 숨이 멎을 뻔 했지만.

아바타를 떠올리는 관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지상에서의 액션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해저 액션도 볼만했다. 마치 부드럽게 춤을 추듯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짓이 유려해서 눈이 즐거웠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등장하는 아서의 근육질 몸매도 좋은 눈요기가 되었다.

조니 뎁에게 가졍폭력에 시달리다가 이혼 후 처음으로 스크린에 복귀한 앰버 허드의 작품이다. 혹자는 앰버 허드를 위해서라도 봐야하는 영화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것만을 이유로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은 아니었다. (이 영화를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봐도 조연에 불과한 앰버 허드에게 돌아가는 개런티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도 있고.)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다른 하나는, DC가 마블을 따라가려 애쓰는 모습이 영화를 망쳤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이전의 DC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등장인물의 심리와 서사에 세밀하게 초점을 맞춰 조명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많았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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