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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an 17. 2019

강을 건넌다

나의 출퇴근길, 나의 일상 길.

버스가 낮게 가라앉는다. 어떤 땅보다 더 낮은 다리를 건너면 어쩐지 해저로 잠수하는 기분이라서 나도 모르게 숨을 살짝 참게 된다.

출근길은 잠수교를 건넌다. 퇴근길은, 같은 길이지만 반포대교를 넘어온다. 두 다리는 결국 하나의 길로 통하지만, 아침과 저녁이라는 시간차 탓인지 풍경도 사뭇 다르다.

'강을 건넌다'는 물리적인 공통성 덕분인지, 지루하고 지겨운 출퇴근 길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해 주는 추억이 호명되곤 한다. 몇 해 전,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훌쩍 어학연수로 다녀온 호주 시드니에서의 기억이다. 나 스스로의 힘과 부모님의 도움을 반반씩 보태서 약 4개월 정도 시드니에서 어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에 살았던 곳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꼭 트레인을 타고 하버브릿지를 건너가야만 했다.

하버브릿지는 시드니 안쪽으로 형성된 만을 건너는 큰 다리이자 시드니의 랜드마크다. 매해 1월 1일이 되는 밤 12시에는 시드니 전역에서 볼 수 있게끔, 이 다리에서 폭죽을 터뜨린다. 멀리서 바라보는 하버브릿지도 장관이지만, 이 다리를 건너며 굽어보는 시드니의 풍경도 예술이다.

하버브릿지를 건너는 트레인에서 나는 꼭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는 쪽에만 앉았다. 매일 보면서도 지겹지 않았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흰 거북이 등껍질 같기도 하고 하얀 조약돌 같이 매끈하기도 해서, 손가락으로 한 번 꼭 쓸어보고 싶었다.

시드니의 랜드마크,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이렇게 바다가 코앞에 있는데, 시드니에서는 신기하게도 바다의 비린내나 소금기 어린 공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서야, 아 이곳이 바다구나,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내 고향도 바다에 둘러싸인 곳인데, 시드니는 내 고향과 또 다른 느낌이어서,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친숙하면서도 어색했다.

서울에 살면서 한강을 셀 수도 없이 건너다니긴 했지만, 요즘만큼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건너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보다도 시드니에서 하버브릿지를 건너 다녔던 단조로운 일상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상에 젖긴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다. 확실히 시드니에서의 생활이 좋았지만, 나는 그때보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지금의 나도 너무 좋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는 어엿한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출근길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그렇긴 하지만 한강을 건너며 시드니를 떠올리는 동안, 한 가지 확실한 감정이 가슴에 여물었다. 꼭 다시 한번 가야지, 일상으로 녹아들었던 그 정취 속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 봐야지.

반짝반짝 빛나는 세빛섬

감았던 눈을 드니 버스는 두둥실 떠올라 어두워진 서울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세빛섬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며 강물에 제 몸을 이리저리 비쳐 보고 있다. 출근길보다 더 발걸음이 가벼운 퇴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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