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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Mar 04. 2018

윤해후, 라는 필명

내 이름의 이야기


필명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숨기고자 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벽을 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꾸며낸 자신으로 어떻게 진실된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의 마음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타박에 가까운 말이었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이 필명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가 현실의 '자신'을 감추고 글을 쓰는 자신과 분리해 내기 위해서라면, 내가 이 이름을 필명으로 정했던 이유는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나는 나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해 필명을 쓴다.


엄마와 아빠,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시고 나에게 예쁜 이름도 지어주셨다.

어릴 적부터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내기 위해 늘 골몰했고, 지금도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화두이다. 나는 나의 선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고, 부모의 성적 관계 속에서 생긴 부산물이었다. 부모가 나를 가지기로 '선택' 했기에 나는 태어남을 '강요' 당했고, 그렇기에 나는 매일매일을 삶을 긍정하려는 노력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야 했다. 여전히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태어나느냐 마냐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단연코 후자 쪽이다. 그러나 이미 태어나 세상에 내던져졌고 이를 무를 수는 없으니 일단은 살아보는 중이다. 기왕이면 좀 더 잘.


나의 본명은 아버지가 나의 탄생을 기뻐하며, 그리고 나의 삶에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지어준 이름이다. 탄생 이후 나에게 닥칠 온갖 괴로움들이야 그 당시에는 결코 알 수 없었겠지만, 나의 탄생 자체는 그것만으로도 분명 나의 부모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태어났다는 증거를 내 이름으로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이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생이 나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나에게 주어졌던 것처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나의 본명이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정체성이 확립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에게 다른 이름들을 붙여주었다.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되고 싶은 나'에 집중을 했다.

십 대 시절에는 이 '이름 짓기'에 꽤 골몰했다. 영어로, 한자어로, 혹은 내가 제대로 발음하는 것이 맞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언어로, 나는 나에게 다양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떤 이름은 오래도록 남아 지금도 나의 본명만큼 열심히 불리고 있고, 또 어떤 이름은 그저 스쳐 지나가 단 한 번도 나로서 불려 보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우울이 하늘이라면 이런 모습일까

우울이 소나기처럼 들이닥쳤던 때가 있었다. 한 여름의 장마처럼 어떤 전조가 분명 있었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에 나는 서서히 침수되었다. 자존감을 우울의 홍수 속에서 놓쳐버렸고,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우울은 간헐적이지만 끈질기게 찾아왔고,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이 그냥 흘러갔다. 그러나 언제나 우울이 나를 이겼으며, 나는 번번이 가라앉았다.

그 와중에도 내가 놓지 않았던 것 한 가지는 '글쓰기'였다.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부정적인 기운을 낱말들 속에 새겼다. 그것이 그 당시 나의 우울증을 치료해 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에 매몰되게 만들었으며, 우울감의 감옥에 나 스스로를 가두게끔 했다. 아무런 효과도 없는 글쓰기를 지속했던 이유는, 그럼에도 글쓰기가 나를 죽음이 아닌 삶에 종속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었다. 우울하더라도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붙잡아주었다. 훗날 더 큰 괴로움을 맞딱뜨리게 될 지라도, 현재를 살아서 지나갈 수 있게 했다.


물론 영원한 우울이라는 것은 없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마전선은 계절풍을 타고 지나가고, 온몸으로 열과 에너지를 잔뜩 받을 수 있는 여름과 같은 '괜찮은 날들'이 돌아왔다. 그제야 나는 나의 우울의 홍수를, 그 홍수로 떠내려가 폐허가 된 나의 자존감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침잠했던 그 시기의 글들을 다시 읽어 볼 수도 있었다.

다시 나의 존재를 부정하며 가라앉을 날은 분명 돌아올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나를 기억하고 싶었다. 우울의 홍수에 또다시 휩쓸리더라도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나의 기쁠 나날들을 기원해 내 이름에 '기쁨'을 새겨준 아버지의 마음과 같이, 나는 우울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서 나를 새롭게 명명하고 싶었다. 길잡이는 되지 못했어도 어둠 속에서 간신히 생에 머물 수 있도록 붙잡았던 가냘픈 등불과 같은 글쓰기를 할 때, 그 이름을 쓰고 싶었다.


이런 한자들이 정말 이름에 쓰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옥편을 찾아가며 조악하게 한자어들을 모아 필명을 만들었다.

예쁠 윤贇
어린아이 해孩
울 후吼

나 스스로를 내내 어여삐 여기자는 의미의 예쁠 윤贇, 내면의 어린아이의의 욕망을 진지하게 마주해보자는 의미의 어린아이 해孩, 그리고 우울감에 허덕이며 훌쩍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 여기 아직 살아있다고 울부짖어 나를 다독이겠다는 의미의 울 후吼.


그렇게 내 필명 '윤해후' 깊숙한 우울감에서 나를 아끼고자 하는 마음이 반짝 빛을 내며 탄생했다. 그리고 나를, 그리고 내가 쓰는 글들을 향한 진지하고 솔직한 기원들을 담아 다듬어졌다. 우울감에 지지 말고, 그러나 나의 온 감정들을 항상 최선을 다해 마주하고자.


여전히 내 본명을 사랑한다. 나에게 '주어진 생'도 아끼려고 애를 쓴다. 그만큼 나의 선택으로 나의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내 필명도, 그래서 내가 풀어나가는 나의 생의 이야기들도 나는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다.


언제나 항상 나 자신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나의 필명에는 진짜 나 자신을 감추고 숨기려는 의도는 없다. 나 자신을 나 스스로가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런 내가 쓰는 글들에 내가 얼마만큼의 정성을 쏟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냥 나 자신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본문에 나오는 사진들은 모두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Copyright. 2018.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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