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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Goodbye Korea, Hello Canada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13. Goodbye Korea, Hello Canada


2019년 8월 20일. D-day의 아침이 밝았다. 캐나다로 향하는 날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거의 직전에 블로그에 글을 휘갈겼다. 의외로 마음은 차분했다. 복용하던 정신과 약 덕분이었을지, 아니면 단순히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비행기를 타고 열몇 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먼 곳으로 떠나는 여정이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해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사건이었지만, 보통의 날처럼 보내고 싶었다. 당시 함께 하던 사람과 냉면을 먹고 인천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 표를 발권하고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심사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일상으로 여기고 싶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한국 현지 8월 20일 오후 6시 반, 도착 시간은 캐나다 토론토 현지 8월 20일 오후 6시 반. 이상하고 기묘한 시간 여행이었지만 특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할 때면, 시간 여행을 생각하곤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난생 처음 영국을 홀로 갔던 날의 비행이 아마 최초의 시간 여행 기억일 것이다. 아니 사실은 너무 오래 되어서 그때의 기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얼레벌레 사람들과 같이 비행기를 탔고, 자다 깨다 하다 보니 어느덧 영국에 도착했었는데, 비행기를 탔던 시간은 새벽이었고 도착한 시간은 깜깜한 밤이었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해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으니 시간 여행이랄 것도 없었던 것 같다.

돌아올 때는 독일에서 비행기를 탔다. 한낮에 출발해서 한국에 도착하니 다음 날 오후였던가. 비행기에서 내내 잤으면서 집에 돌아와서도 하루를 꼬박 잤다. 어영부영 시간 여행이었다.


시차를 생각하면, 시간대가 다른 나라를 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시간 여행' 같았다.


이 비행기를 타면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거야.


기묘한 감각이 아닐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행 중에는 모두 창문을 닫고 낮은 조도의 실내등만 켜져 있는 게 보통이니까. 기내식이 나오는 시간에 잠깐씩 불이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이때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운이 좋게도 예약할 수 있었다. 기본 이코노미석보다는 넓은 곳을 괜찮은 딜로 비싸지 않게 이용할 기회였는데, 덕분에 비행시간이 괴롭지만은 않았다. 열네 시간 동안 좁은 곳에서 삐그덕거릴 뻔했는데, 넓은 좌석에서 팔다리 쭉쭉 뻗고 편히 캐나다를 향해 날아왔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비행기 안에서도, 여러 가지를 했다. 일상처럼 느끼고 싶다는 욕망의 일환이었다. 노트북을 꺼내 영상번역을 하고(인터넷 검색 찬스를 쓸 수 없어 애를 좀 먹었지만), 공책을 꺼내 소설도 조금 끄적여 쓰고, 전자책 단말기를 꺼내 책도 조금 읽고, 비행기 좌석에 부착된 모니터를 꺼내 영화도 한 편 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토론토 피어슨 국제 공항에 도착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겨울 왕국이라 생각했던 캐나다에도 여름 날씨는 공평했다.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을 반겨주는 환영 인사를 읽으면서도 정말 도착한 게 맞나? 여기가 캐나다가 맞기는 한가?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양한 국적,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바삐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확실히 한국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도착했다, 캐나다에 도착해 버렸다. 아무리 평범한 날의 하루로 만들어보려고 애썼어도,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버린 날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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