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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20. 개강이다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20. 개강이다.


9월 3일, 화요일. 날씨는 좋았고, 첫 수업은 10시 45분이었지만 일찍부터 일어나 곧장 학교로 향했다. 처음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길을 잃고 헤맬까 봐, 그리고 미리 교실에 가서 앉아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이른 걸음을 옮겼다.


개강 첫날, 첫 수업은 피터 Peter 교수님의 국제 정치경제학(Global Political economics)이었다. 제목부터가 흥미를 자아냈는데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들었던 '글로벌리즘의 이해' 수업의 설욕전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그 어떤 선배들의 조언도 마다하고 교양 수업은 내가 듣고 싶은 것을 골라 들을 거라며 자신만만해서 선택한 수업이었다. 골랐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전공 수업을 먼저 넣고 중간에 비는 시간에 들을 수 있는 교양 수업 중 가장 흥미로워 보이면서도 수강인원이 다 차지 않아서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이 그것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대학 새내기가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홀로 듣는 수업에 집중해서 참여하기란 참 쉽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매 수업시간마다 앞자리는 만석이었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듣느라 소심한 나는 뒷자리 구석에 박혀서 수업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고학번이 많았고, 1학년은 손에 꼽을 정도였던 기억도 났다.

중간고사 전까지는 열의에 불타 수업을 참 열심히 들었다. 중간고사 직후에 발표를 할 사람을 뽑길래 자원해서 발표 과제도 홀로 준비해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까지 마쳤던 기억도 있었다. 그 이후로는 출석만 체크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던 기억, 그리고 기말고사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던 기억으로 이어졌는데 충격은 성적표를 받은 후에 아주 크게 왔다. 무려, 디 플러스(D+)라는 성적을 받아버렸던 것이다.

출석도 (중간에 도망간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체크는 했으니까) 빠지지 않고 했고, 과제도 제출하라는 것 전부 했으며 심지어 중간에 발표도 혼자 했고 중간고사와 기말 고사도 모두 쳤는데 너무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받은 것 같아 교수님께 이메일도 보냈었다. 답변은, 성적을 올려주고 싶어도(?) 기말고사에서 3점을 받았기 때문에 올려줄 수 없다는 거였다. 눈물을 머금고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였다.


하지만 그때는 스무 살에, 공부하기보단 놀기를 좋아했던, 그리고 대학 공부에 요령이 없던 어린 시절이었고, 지금은 달랐다. 내 돈으로 학비를 낸다는 것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고, 이제는 공부의 즐거움도 알게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학부 때는 그렇게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영어 수업'을 듣게 된다는 것이었다.


영어는 단순히 제2 외국어가 아니었다. 유학 후 이민을 결심하고 온 나에게 영어는 생활이어야 했고 의사소통의 수단이어야 했다. 한국어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새로운 학문을 영어로 공부한다는 것이 영어 공부 자체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영어로 수업을 들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또 색다른 기분이었다.


긴장과 기대를 품고 첫 수업 교실에 들어갔을 때, 내가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교실 내에 한국인 학생 비율이 과반이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고 누가 뭐래도 한국어로 대화 중인 학생이 정말 많았다. 교실 한 켠에 우르르 모여 앉아 저들끼리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 보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이 수업, 나 혼자 쩔쩔매지 않아도 되겠구나. 어려우면 서로 도와가며 함께 공부할 수 있겠구나. 같은 전공 친구들과 영어로만 소통하는 것보다 좀 더 수월한 소통을 하며 외롭지 않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분명 내가 몇 살이라도 더 어렸다면 한국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기피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어로 말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어울리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한때는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이 싫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단순히 몇 달 머물다 가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오래 지낼 새로운 나라에 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영영 마주치지 않게 되는 수도 있겠지만, 같은 전공을 공부하니 언젠가는 어디선가 어떻게든 다시 마주칠 수도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해외에 나와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도 생겼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의 용기에 작은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모두 반가웠다.


하하호호 인사 나누며 통성명을 하는 사이 교수님인 피터가 들어왔다.

첫 수업은 으레 그렇듯 해당 과목에 대한 소개로 시작했다. 국제 정치경제학은 세계를 둘러싼 정치 경제적인 이슈를 배우는 과목이라며, 글로벌리즘과 각 세계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정치경제학에 대해 배울 것이라고 했다. 간략하게 소개해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익숙한 단어들이 많이 들려서 반가웠다. 대학교 다닐 때 정말 놀기만 했던 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이 수업이 세네카에서 듣는 첫 번째 수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피터는 우리에게 각자 자기소개를 하도록 요청했다. 이름과 출신 국가,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무얼 했는지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앞으로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2년가량을 함께 공부할 동기들의 소개를 하나씩 듣다 보니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앞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I want to make the world better place.


그 말로 나의 소개를 마쳤다.


1학기는 총 6개 과목을 수강한다. 아래 시간표에 있는 다섯 과목과, 온라인으로 언제든 수강이 가능한 한 과목이다. 온라인 수강 과목은 세네카 컬리지에 관한, 그리고 전반적인 컬리지 생활에 관한 교양 수업이었고 대학도 졸업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온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과목일지 몰라도 갓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대학 생활이 처음인 사람들에겐 유익하고 알찬 커리큘럼으로 짜여 있다.

월요일에 있는 관세 개론(Introduction to Customs)은 캐나다에서 사용되는 관세 항목에 관한 개괄적인 수업이다. 관세가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는 물론이거니와 캐나다에서 주별로 상이한 세금에 관한 부분도 배울 수 있다. 1학기 수업이기 때문에 심도 있는 부분까진 배우지 않지만, 캐나다에서 처음 학교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캐나다의 관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좋은 과목이다. 1학기 때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으로, 이 과목을 들어야 다음 단계 과목으로 넘어갈 수 있다.

월요일 두 번째 수업인, 문맥을 넘어선 소통(Communicating Across Context)은 줄여서 보통 '컴(COM)'이라고 불렀는데 영어로 의사소통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수업이다. 영어가 제1 언어인 학생들에게도 어려울 수 있는 수업이지만, 나에겐 이만큼 좋은 수업도 없었다. 심도 있는 영문법뿐만 아니라, 영어로 에세이 쓰는 방법, 보고서 작성하는 방법, 그리고 교수님께 이메일 보내는 알맞은 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수요일 수업은 수학 수업이었다. 물류통상, 관세와 수학이 무슨 상관일까 싶었지만, 실제로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복리 계산법을 포함해 여러 곳에 응용할 수 있는 수학을 배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잘 마쳤다면 정말 무리 없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금요일에 있는 운송 개론(Introduction to Transportation) 수업은 무역업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운송에 관한 개괄적인 내용을 배우게 된다. 어떤 운송 수단이 있는지, 특히 캐나다 내에서 어떤 운송 수단을 많이 사용하는지에서 시작한다. 화물 종류에 따라 어떤 운송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지도 함께 배울 수 있다.


영어로 공부를 한다는 것에 조금 부담감도 있었고 긴장이 많이 되었지만, 첫 수업 이후에 친해진 동기들 덕분에 수업이 덜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개인 과제와 조별 과제, 그리고 시험의 지옥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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