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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un 26. 2021

내일을 위한 내 일 - 이다혜

내일을 위한 내 일

이다혜


미쳤다, 미쳤어. 지금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새로운 거에 도전하고 싶어 진다. 남들은 벌써 경력 n년차 직장인이 되어서 자기 분야가 생긴 나이인데 나는 아직 지금 직장에서 1년도 안 됐는데, 새로운 직업의 길을 모색하고 싶어 진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고민이 가속화되었다.


캐나다에 이민을 계획하면서 지금 일하는 분야인 국제물류통상&관세 쪽으로는 적당히 취직해서 경력 쌓고 영주권을 따는 발판으로만 삼은 다음, 영주권 취득 후에 다시 학교를 다녀 수의 테크니션으로 진로를 변경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했다. 생각만 한 게 아니고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또 일기에도 쓰고 브런치에 발행한 다른 글에도 썼다. 소문을 많이 내야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어느 자기 계발서에서 읽은 구절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이렇게 정한 진로를 다시 변경하지 않으리라는 작은 다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 근래 진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비단 이 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꾸준히 나의 미래는, 나의 장래는, 앞으로의 나는 뭘 하고 살 것인지를 고민했다. 더군다나 나이 든 여성의 성공담이 유독 소셜 미디어에 넘치는 걸 보니, 내 인생은 앞으로도 길고 찬란할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적 느낌.


이 책은, 유선애의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과 대비대는 지점이 많았다. 좀 더 원숙하고 정제된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의 인터뷰 대상자들이 90년대에 태어난,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궤도 위에 놓인 2-30대라면, <내일을 위한 내 일>은 자신의 커리어에 더 오래 몸담고 있던 여성들이 대상이었다.

솔직한 평가를 먼저 해보자면, 앞에 인터뷰했던 영화감독 윤가은, 배구선수 양효진, 바리스타 전주연, CEO 엄윤미 씨의 이야기는 조금 두루뭉실하다고 할까, 와닿지 않는다고 할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철학은 면면히 살필 수 있었지만,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구체적인 노력은 잘 읽히지 않았다. 물론 윤가은 영화감독님이 자신의 철학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양효진 선수의 성실함이 언급되기도 했으며, 바리스타 전주연 씨의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과 일에 대한 사랑, CEO 엄윤미 씨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현재 직업 만족도 같은 것은 잡아낼 수 있었는데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 목차를 살폈을 때 가장 기대했던, 정세랑 작가와 이상희 교수님, 이수정 교수님의 인터뷰는 기대 이상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이상희 교수님과 이수정 교수님, 대충 40대 중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셨다. 이분들이 자신의 커리어에 뛰어들었던 그 시점에는 그 분야에서 여성이 종사하고 있지도 않았을 테고 있었어도 굉장히 소수였을 것이다. 그런 어려움을 딛고 꾸준히 버티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 경외감이 느껴졌다.

이수정 교수님의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생각에 남았다. 그래서 아마 지금 내 일에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지금 나의 일은 물류 배송에 관한 건데, 이게 미시적으로 봤을 때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긴 하지만 거시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보았을 때는 탄소발자국 증가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 다른 길, 좀 더 친환경적이고 지구를 덜 다치게 하고, 또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이 40에 도전하더라도 늦지 않을까. 이런 흔들림에 누가 답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정세랑 작가와 이상희 교수님의 이 말들이 너무 아프게 찔러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열심히 잘해보자, 라는 마음도 있었다.


P. 110. 아마추어는 시작은 신나서 잘해도 끝을 잘 못 내는 경향이 있다면, 프로는 싫어도 끝을 내는 일에 숙달된 사람들이다. -정세랑

P. 158.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은 누구든지 잘할 수 있어요. 그보다는 하기 싫은 일도 심드렁하게 해낼 줄 아는 사람이 오래가고 생산적인 일을 하더라고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삶의 목표는 아니겠지만. - 이상희


나는 단순히 재미를 찾아, 자극을 찾아 이것저것 찔러보기만 하는 아마추어 같다는 생각과, 좋아하는 일도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기 싫은 일을 매번 하기 힘들어하니 오래가기는 글렀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세상에 어떻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겠으며, 재미있는 시작만으로 끝맺음하지 못하고 일 벌리기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이 마음가짐은 언제고 나에게 꼭 필요한 충언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내 진로를 다시 고민하는 것도 분명 값진 일이겠지만, 현재 주어진 일, 내가 맡고 있는 일을 지금의 내 자리에서 잘 버텨내고 꾸준히 해내다 보면 나의 내일도 어느 순간은 보이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믿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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