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처참해졌다. 2022년이 되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전쟁' 뉴스를 봐야 하는가. 엄밀히 따지면 전쟁도 아니고 일방적인 침략인 이 사태에 자꾸만 무너졌다. 정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 세상이라면 전쟁은 진작에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책의 제목을 여러 번 들여다보면서, 역시 이 책은 저자의 희망사항을 늘어놓은 책이라는 걸 실감한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살면서 아마 많이 들어본 자연의 법칙이 아닐까 싶다. 살아남기 적절한 종이 살아남고, 약한 자는 잡아 먹히고 강한 자는 잡아 먹는다. 고로 살아남은 쪽은 살아남을 만큼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친밀한 쪽이 더 잘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친밀하다는 것은 공격적이지 않다는 뜻이었다. 낯선 이가 무리에 들어왔을 때 날을 먼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내어주며 반기는 것이라고 했다.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를 여기서 찾아냈고, 야생 늑대와 인간에게 길들여진 늑대, 즉 개의 차이를 여기서 찾아냈다.
비판없이 받아들이면 맞는 말처럼 보인다. 야생 늑대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깊숙히 들어가다가 점점 멸종 위기종이 되어갔고, 인간과 함께 사는 개의 개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니, 과연 인간에게 길들여진 종의 승리처럼 보일만 했다.
하지만 인간에게 길들여졌다가 버려지는 개도 있다. 인간 때문에 서식지를 잃어 개체 수가 줄어든 야생 늑대는 훨씬 많다. 단순히 양적으로 차이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 종의 번성을 뜻하지만은 않듯, 그 종이 멸종 위기라고 해서 그 이유가 친밀함이 부족한 종이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종종 인과 관계를 어설프게 엮어두어 믿고 싶은 사실만 볼 수 있게 길을 닦아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P. 175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향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본성을 길들이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우리 내면에 최악의 속성의 씨앗을 뿌린 것도 동일한 뇌 부위에서 모두 일어나는 일이다.
친절을 베푸는 데 작용하는 뇌의 부위와, 타인에게 잔인해지도록 하는 뇌의 부위가 같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꽤 고민했다. 남에게 친절해질 수 있는 사람은 남에게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뜻인지, 남에게 친절해진 만큼 잔인성이 줄어든다는 것인지, 남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은 잔인해질 수도 없다는 걸까.
저자도 자기가 믿고 싶은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럴싸한 논거를 가져다 붙인만큼, 나도 내가 믿고 싶은 것들을 더 믿어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답은 조금 쉬웠다. 타인에게 쉽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타인에게 잔인해질 수 없는 사람인 걸로 믿기로 했다.
감사의 말을 읽고나니 많은 의문이 풀렸다. 저자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갈팡질팡하는 부분들은, 좀 더 다정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희망사항이 녹아있는 부분들이었다.
차마 추천의 말로 끝맺음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기왕 읽어볼 거라면 감사의 말을 먼저 읽은 후에 읽어보기를 권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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