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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an 27. 2022

마이너 필링스 - 캐시 박 홍

인종차별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니하오!"

2019년 8월,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향한 인사가 들렸다. 너무도 정확하게 나를 향했다. 수하물을 되찾고 이제 갓 출구에서 나온 참이었는데, 내가 꽤 늦게 나온 탓에 주변에 나 말고는 걸어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 중에 아시안은 나뿐이었다.

나를 향해 당돌한 인사를 날린 사람을 쳐다보았다. 짐을 옮겨주는 걸 돈 받고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의 앞에는 무거운 짐을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카트가 서 있었고, 그는 그 카트에 몸을 기대고 서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난 중국인이 아니야! 척수반사처럼 내지른 내 대답에도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준비한 다른 인삿말을 줄줄이 내뱉었다. 곤니치와! 안녕하세요! 웰컴투캐나다!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백인 친구들 혹은 그냥 남자인 사람들, 아니 그냥 나보다 조금 덜 예민한 사람에게 한다면 다들 내가 너무 예민하게구는 거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냥 친절하려고 말 건 거 아냐?

그 사람의 인삿말이 인종차별적이었다는 이유도 하나하나 읊을 수 있다. 내 외모를 보고 내 국적을 판단하려 했다는 것이 그 첫 번째고, 심지어 틀렸다는 것은 두 번째일 것이다. 그 사람은 남자였고 나는 여자였다는 것도 이유로 하나 들어봐도 될까? 아시아 여자에게 씌워지는 프레임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 콕 찝어서 그 사람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었던 미묘한 지점이 있었다. 나도 그 사람의 국적을 대번에 알아맞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모로 봐서는 인도 사람 같기도 했고 파키스탄 사람 같기도 했다. 혹은 필리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아, 아무래도 그냥 인도 사람이었나보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정해버리면 나도 똑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건가?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나서 "나마스테"하고 인사하지는 않았다. 그게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그 인사를 한 사람이 백인 남자/백인 여자였다면 내 반응은 어땠을지를 생각해봤다. 아마 즉각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 *끼야!"하고 욕부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상대방은 당황스럽다는 듯 무해한 표정으로 "오, 너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 친근하게 굴려고 했을 뿐이지,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나 아시안 친구들 많아." 라는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아, 벌써부터 피곤하다. 그러면 정답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의외로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미묘한, 그러나 확실한 인종차별.


P. 81. 소수적 감정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으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우리가 지금껏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바로 '마이너 필링스' 그러니까 '소수적 감정'이었다. 이 책을 읽으니 어딘가 희뿌옇게 자리잡혀 있던 애매모호하고 설명 불가능했던 경험들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건 인종 차별이었고, 그건 내 망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 받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인종차별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종종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나를 향해 "니하오!"하고 외쳤던 그 남자를 보자마자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어도) 단번에 그의 계급을 파악하게 되는 내 편견 같은 것을 보면, 나 역시도 어느 정도 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씨앗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차별들 뉴스들만 봐도, 한국인이 인종차별 피해자로만 영원히 남아있을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주지 않는가. 이 영역들의 간극을 단순히 '피해'와 '가해'로 양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피해자 서사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과 동시에, 내 속에 있는 가해자의 씨앗을 비추며 "완전 무결한 피해자란 존재하지 않는다"를 말하는 이 책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의 이 마음을 작가가 한 문장으로 너무 잘 표현해 주었다.


P. 262. 윤리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역사에 책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는 세상이 자기에게 빚지고 있다고 여기는 부류의 백인 남자가 되느니 차라리 빚을 지겠다.


<마이너 필링스>는 영문으로 읽기를 도전하겠다고 호기롭게 원서를 샀다가 약 10분의 1정도 읽고서는 덮어두었던 책이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한글로 다시 읽으니,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았다가 뒷부분으로 갈수록 속도가 붙었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책 전체의 구성에 심혈을 기울여 짜놨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소설도 아닌데, 초반에 단서처럼 등장한 조각이 뒷부분에 가서 짜맞춰진다. "그 이야기를 거기서 한 이유가 뒤에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였구나!" 박수가 절로 나왔다.

가령 이런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했다던 사람에게 쌀쌀맞게 대했는데, 작가는 아버지를 무례하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앞에 기술한다. 독자들에게도 약간의 호기심을 남긴 채, 그 이야기는 거기서 멈춰버렸다.

한국전쟁 이야기는 거의 마지막장에 다시 등장한다. 한국을 잘 모르는 미군 장교가 지도에서 그어 놓은 경계선이 그대로 남북을 가르는 선이 되었고, 미국인 외과 의사가 창시한 쌍꺼풀 수술은 한국인 성노동자가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고안된 것이었다는 이야기. 이 거대한 흐름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보인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람을 다시 만나보자. 그럼 우리의 표정은 작가의 아버지가 지은 표정과 다를바가 없게 될 것이다.


아, 이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하고 또 해도, 챕터별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도 모자랄 것 같은 지경이다. 캐나다에 이민와서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더더욱.

작가의 경험은, 아주 어린 시절 이주해와 자란 이주민 1.5세/2세의 경험이기 때문에, 이민 1세대인 나의 경험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지점들이 너무 통통 튀어 보인다. 눈에 쏙쏙, 마음에 쑥쑥 들어온다. 한국에 있었어도 같았을까?

한국에서만 살더라도 같은 기분일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작가가 기술하는 인종차별의 그 미묘하고 애매한 부분들은, 한국에서 사는 여성들이 매일같이 느끼는 성차별과 아주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차별의 경험은 모두 그 결이 비슷하다.


<마이너 필링스>에서 영어가 서툰 사람도 영어로 시를 쓸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용기를 얻어서 나도 영어로 시를 쓰고 싶어졌다.


abcd, 그 다음엔 e가 나온다. 나는 스케쥴의 스펠링을 쉽게 읊지만, 캐나다에서 나고 자라서 영어가 모국어라는 너는 조금 헤맨다. 이것 봐, 너도 영어가 어렵지? 예스 잇 이즈!


이 정도면 나도 영어로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니겠지만)


그리고 <마이너 필링스>를 통해 한국계 미국인 문인들을 처음 배웠다. 테레사 학경 차, (차학경? 차학경! 왠지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한 이름인데?) 명미 킴, (김명미! 맹미야, 하고 불러보고 싶은 이름인걸?) 에밀리 정민 윤, (윤정민, 정민이는 흔한 한국인 이름 중 하나지!) 세상에 찾아보면 아마 이들보다 더 많은 한국계 미국인/혹은 한국이 아닌 다른 국적을 가진 한국계 문인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작년 초에 한국계 미국인 촉망받는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도 있었다.

https://www.vogue.co.kr/2021/07/26/한국계-소설가-4인/


지식에 목이 마르다.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넷플릭스 시리즈 <더 체어>가 생각나며 나도 다시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또! 한다.


아마 올해가 가기 전에 영문판으로 다시 읽어보며, 한글로 읽을 때와는 또다른 감상을 찾아내려 할 것 같다. 읽을수록, 구절 구절을 곱씹을수록 그 진정한 의미가 통렬하게 새겨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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