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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Dec 10. 2021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하미나

우울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정확한 시기를 가늠할 수가 없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꽤나 우울했던 사람이었다. 병원을 가서 진단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적당히 조울증 같은 게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을 가지 못했던 이유는 단연코 가족 탓이었다. 엄마는 내게 정신과 진료를 한 번이라도 받으면 "이름에 빨간 줄 긋는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차라리 미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요즘 한국의 20-30대 여성들의 우울증은 사회 현상으로 분석되어 기사로도 종종 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의 나는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그 통계에 나의 사례도 확실히 추가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20대 중반에 곁에 있던 사람의 도움을 받아 신경정신과를 내원해 우울증 진단을 받은 이래로 나는 쭉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사실은 병원에서 진단받기도 전부터 나의 병증은 내 삶을 잠식하고 있었으니까.


하미나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이하 <미괴오똑>)을 읽으며 초반에는 다시금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작고 소소한 트리거들 탓에 힘들기도 했다. 다양한 당사자들의 갖가지 경험담은 제각기 달랐지만 또 비슷했고, 나와 똑같진 않아도 너무 이해가 가는 생이었다. 다행히 후반부로 갈수록 경험과 이론을 적절히 배치한 작가의 (혹은 편집자의) 전략 덕분에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우울의 근원

읽는 내내 내가 가진 우울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건 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나는 왜 끊임없이 우울하고 또 우울할까. 누가 봐도 괜찮은 삶을 사는데도 나는 자꾸만 우울감을 느낀다, 대체 어째서일까?

P. 122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상처는 계속해서 깊어진다. 가족이니까 포기하기도 어렵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아닌가. 오랜 시간 고통을 부정당하다 보면 중요한 순간에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할 의지를 잃고 고립된다. 혼자 죽는 길을 택한다. 나의 감정이 인정받는가, 인정받지 못하는가. 이것은 사람을 죽고 살게 만드는 문제이다.

최초의 우울감은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출발했다. 당혹스럽고 불쾌했을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울의 우물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경험들이 떠오른다. 성추행당한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놓았을 때 오히려 혼이 났다던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힘들다는 얘기를 했더니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며 윽박질렀던 일이라던가. 나의 감정을 하나씩 꺼내 놓으려 하면, 나의 가족은 나를 예민하고 참을성 없으며 고집이 센 아이로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내가 예민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고집만 센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내게 대단한 성격적 결함이 있으니 이렇게 인생 살기가 힘든 거야, 하고 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가족들에게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길 멈추었다. 특히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는 나의 살 길을 스스로 개척하기 시작했다. 독립으로 내몰렸다. 문제가 생겨도 가족과 상의하기보다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혼자 앓았다. 자연스럽게 속이 썩어 들어갔고 곪았으며 우울증이 심해졌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나를 돌봐줄 수 없다, 나를 도울 수 없다는 감각. 그 고립감. 그래서 나도 '혼자 죽는 길을 택'하곤 했다.

혹은 연애 관계로 도망치기도 했다.


사랑 없인 못 살아

P. 159 연애 관계는 여성이 대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몇 안 되는 경험이다. 가족 안에서도 회사 안에서도 받기 힘들었던 인정의 감각을, 연애는 준다. 섹스는 '누군가 나를 간절히 원한다'라는 감각을 준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죽으면 아쉬운 존재이다. 매력과 관능은 권력처럼 휘둘러져, 마치 내가 이 관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일시적이며 허구적인 힘이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하는 것만이 내게 남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연애관계 혹은 유사 연애관계를 많이 맺곤 했다. 자해의 일종으로 막무가내 섹스를 한 적도 여러 차례 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연애 관계로 나의 빈 곳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당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서, 나는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20대의 나는 끊임없이 연애를 했다. 연애를 '쉬었던' 적을 손에 꼽을 정도니까, 연애하지 않은 나를 떠올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우울증을 악화시켜 극단에 치닫도록 하는 기폭제가 된 데이트 폭력 가해자도 있었고, 내 손을 잡아끌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 준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마운 사람은 다시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되기도 했다.

상처 입기, 상처 입히기, 상처 달래기와 상처 치유하기를 숱하게 반복했다. 우울증은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가 급격히 나빠지기도 했다. 나아질 때는 아주 조금 나아지는데, 나빠질 때는 그 이전에 나빴던 것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나빠졌다. 그 시절 내 병증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남들은 바닥까지 떨어지면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일만 남았다고 해. 그런데 나는 어떠냐면, 그 바닥에서 더 깊게 들어가. 혼자 땅을 파고 또 깊고 깊은 곳으로 없는 바닥을 만들어서 더 내려가. 어느 날은 다시 위로 올라오기도 하는데, 다시 떨어지게 되면 이전에 파둔 곳보다 더 깊은 곳으로 떨어져. 그 낙차가 너무 아파."


어느새 나는 자주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살 생존자

내 손목의 상처를 본 사람들이 호들갑 떠는 게 싫었다. 위로와 걱정을 받는 것도 싫었다. 사실 그들이 내게 관심이 있고 나를 정말 걱정해주기 때문에 안타까워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주변에 우울한 기운이 감지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P. 195 자살을 말하면 갑작스레 너무 많은 위로와 걱정을 받는다. 이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째서 모두가 자살을 천연덕스럽게 막아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작 삶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긍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막상 누가 죽으려 하면 달려들어 막는다.

내게 인생은 늘 고통이었다. 지금은 인생을 고통이라고 말함으로써 고통의 힘을 약화시킨다. 자꾸만 말을 해야 힘이 약해진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인생은 좋은 것이라고 긍정하며 사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말하는 "인생은 고통"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이였고, 그래서 그는 자살 사고를 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자살사고는 매번 다르게 다가왔었다. 어느 날은 희뿌연 연기처럼 슬그머니 스며들어 온몸의 기운을 빼앗았다. 그런 날이면 아무것도 먹지 않음으로써 자살을 도모했다. 또 어떤 날은 온몸에 그 어떤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는데, 그래서 손톱으로 혹은 이빨로 몸에 상처를 내거나 도구를 사용해서 상처를 내며 자살을 기도했다. 그럼에도 통증을 느낄 수 없을 때가 많았는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흉터가 진 팔다리를 보는 것이 꽤 불쾌했다. 또 자살에 실패했구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자살에 실패해서 생존자가 되었다. 지금은 자살에 실패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락한 삶이 찾아왔다. 하지만 어쩐지 그때 자살에 성공했어도 나는 괜찮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이건 나는 수많은 자살에 실패해서 생존자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살 사고가 들었던 것은 아마도 작년. 사실 자살 사고가 심하게 드는 시기는 머릿속이 희뿌옇다. 그 부분만 물감으로 휘저어 놓은 듯 뭉근한데, 우연히 남은 그 시절의 기록을 하나하나 훑고 나서야 어렴풋이, 그런 날이 있었구나,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정도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다시 읽을 적이면, 그 글쓰기는 당시의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였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글쓰기로 극복할 수 있을까

P. 113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 쓰는 글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독자가 울기 전에 작가가 먼저 울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글쓰기는 남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쓴다기보다는 울며불며 시도하는 자기 치유에 가깝다.

기록을 남기던 당시에는 그 글쓰기가 나의 병증을 치유하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그저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는 토사물에 가까웠다. 나는 왜 자꾸 이렇게 괴로운가,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가. 분명 이 시기가 지나면 나아질 것을 알지만, 나는 아직 힘든 시기에 남아있고 그렇기에 나의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는 영원인 것인데. 반복되는 괴로움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지나고 나니까 치유였다.


나에게 글쓰기가 치유였듯,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치유법이 있을 것이다.

하미나 작가에게는 <미괴오똑>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 병증의 치유법이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삶의 한 구석구석 짚어보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나씩 던져놓는 모습이, 그리고 비슷한 병증을 앓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경험을 글로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는 모습이, 모두 치유의 일환으로 읽혔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어느새 치유로 다가왔다.


지금은, 아직 의사에게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스스로 우울증 완치 판정을 내렸다. 앞으로 다시 감기처럼 우울증이 찾아와도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미괴오똑>에서 마주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를 덜 외롭게 만들어 주었고, 다시 찾아올 우울증에도 힘이 되어 줄 거라는 걸 느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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