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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pr 18. 2022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둘이 만나 하나 된 가족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지금까지의 내 동거인들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 언니 둘과 동기 하나와 함께 살았던 반지하의 투룸에서 시작해 곧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온 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던 또 다른 반지하의 투룸은 고등학교 동창, 대학 후배, 그리고 철거민 연대 활동을 하다가 만났던 친구 등등을 동거인으로 맞이했었다. 혼자 원룸에서도 살아봤고, 또 호주에 어학연수와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땐 다양한 형태의 셰어 하우스에서 살기도 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 집에서 1년 정도 있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와 같이 일하던 동생과 살았던 때도 있었다.

캐나다로 유학을 왔을 땐 룸 렌트를 전전하다가 맘 맞았던 친구와 같이 콘도를 렌트해 살기도 했었고.

그리고 지금은 미래를 약속한 백인 남자애랑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살고 있다.


나의 동거인은 대부분 여자였다. 게이인 친구와 함께 잠깐 살았을 때 빼고는 남자와 같이 산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자와 함께 사는 건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데, 생각보다 여자와 '평생' 같이 산다는 것을 의외로 상상해 본 적은 없다. 나를 바이로 정체화 했는데도, 한국에서 결혼을 한다면 남자랑 해야지, 하고 막연히 생각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이 유행이었을 적엔, 제목만 보고선 레즈비언 둘이 살림 차려서 사는 내용인가 보네, 하고 넘겨 짚기도 했다. 단단한 착각이었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마음이 맞는 (현재까지는) 비혼인 두 여자가 집을 함께 구입하고 살림을 같이 꾸려나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읽으면서, 나는 왜 서울에 안 사는 거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내 친구들이 사는 동네에서 나도 같이 살고 싶다, 늦은 저녁 퇴근하면서 힘들다고 투덜거리면 친구가 편의점 맥주를 하나 사주며 하소연을 들어주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들이었다.

지금의 동거인(이자 파트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닌데, 같이 살지 않는 - 그러나 근처에 사는 - 친구의 존재가 자꾸만 그리워지고 말았다.


책을 읽으며 자꾸 나의 동거인됨 자질과 짝꿍의 동거인됨 자질을 하나씩 재고 따지게 되었다.


P. 118.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그런 자질이 부족했다. (지금도 약간?) 갈등이 생기면 봉합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회피하기를 바랐고, 일단 덮어두고 없는 척하기를 원했다. 차라리 동거 생활을 끝내기를 택하는 편이었다.

지금의 동거인도 약간의 회피 성향을 가졌지만, 나보다 아주 조금은 나았기 때문에 공동생활을 위해 먼저 노력을 해준다. 문제가 포착되면 물어봐주고 대화로 나를 당겨주고 상호 만족할 수 있는 결론으로 이끌어준다.

물론! 그전에 우리의 동거 생활은 가사 노동의 90%를 이미 내가 전담하고 있다는 것을 동거인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덕분이다. (잠깐, 이러면 내 동거인이야말로 동거인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닌가?)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중요하지. 이렇게 합리화하고 넘어가 버리지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귀한 책이라는 생각을 자꾸 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국 사회의 통념상 집을 구입한다는 행위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지 않는 두 여성이 함께 집을 구입한다는 것이 꽤 신선한 발상처럼 느껴졌다. 법적인 구속력이 아무도 없는 두 타인이, 함께 덜컥 집을 샀는데, 만약 사이가 틀어져 버리면? 만약 둘 중 하나가 정말 나쁜 맘이라도 먹어버리면?

지금 한국 사회는 정말 빠른 속도로 변해서, 남-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고, 다양한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법적으로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생활 동반자법'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P. 16. 1인 가구는 원자와 같다. 물론 혼자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도 있다. 원자가 둘 결합한 분자도 있을 테고 셋, 넷, 또는 열둘이 결합한 분자도 생길 수 있다. 단단한 결합도 느슨한 결합도 있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의 단단한 결합만이 가족의 기본이던 시대는 가고 있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태어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가족의 분자식은 W2C4쯤 되려나. 여자 둘 고양이 넷. 지금의 분자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다.


다양한 분자 가족이 더 안전한 생활을 누리기 위한 법안이 빨리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캐나다는 '커먼로 Common Law'라는 법이 있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커플(헤테로, 레즈비언, 게이, 성지향성이 어떻든)의 권리를 결혼한 커플과 같이 인정해주는 법이다. 함께 산지 1년 이상이 되고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커먼로로 인정을 받아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유럽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함께 사는 파트너와의 파트너십을 인정해주는 법이 있다고 했다.

한국도 '생활 동반자법'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하는데, 캐나다의 커먼로가 '연인'으로 관계가 한정된 반면 '생활 동반자법'은 가족의 관계를 조금 더 넓게 적용하려는 법이라고 알고 있다. 즉, 이 책에서처럼 친구인 두 사람이 함께 살더라도 가족으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되는 법령일 것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좋은 선례가 되었다. 김하나와 황선우가 함께 살게 되면서 동거인으로서 함께 노력하고 갈등을 해소하려는 모습은 귀감이 될만했다. 앞으로의 미래를 둘이 평생 함께 하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지도 않다는 점이 특히 현실적이었고, 언제든 이별이 오더라도 함께 잘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상한 바람일지 모르겠지만, 둘이 동거를 끝내게 될 때에도, 함께 쓴 책이 나와 아름다우면서도 현실적인 이별의 모습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둘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단단한 우정을 과시하는 동거 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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