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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pr 19. 2022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추혜인

일상에 페미니즘을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추혜인


캐나다에는 당연히 한국과 의료 시스템이 다르다. 내가 거주하는 온타리오 주에서는 온타리오 건강 보험 프로그램(Ontario Health Insurance Program, 줄여서 오힙 OHIP)이라는 보험이 있는데, 한국의 건강 보험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치과 진료와 안과 진료가 아닌 이상에는 오힙으로 진료비가 모두 커버가 되고, 약값은 보험 커버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게 회사를 다니면 회사에서 따로 마련한 사보험의 혜택으로 주정부 보험에서 혜택 받지 못하는 곳을 커버하게 된다.

오힙은 국적에 상관없이 온타리오 주에 거주하면서 6개월 이상 풀타임으로 세금을 내며 직장 생활을 하면 신청해서 카드를 받을 수 있는데, 그 덕분에 아직 한국인인 데다가 영주권조차 없는 나도 오힙의 혜택 대상자가 되었다.

오힙 카드를 받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패밀리 닥터, 즉 주치의를 등록한 일이었다. 근처에 있는, 환자를 모집 중인 주치의 아무에게나 가서 등록할 수도 있었겠지만, 앞으로 나의 건강을 오래도록 책임져 줄 사람으로 한국어 소통이 가능하면서 세심하게 돌봐줄 수 있는 선생님을 추천받아서 등록했다.


'주치의'라니. 동네 의사 선생님도 아니고, '주치의'가 생겼다는 것은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물론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에 등장하는 주치의 선생님은 '동네 주치의'에 가까워서 동네 의사 선생님과 주치의 선생님을 잘 합쳐둔 느낌이라 조금 다른 듯했다.


P. 62. 동네 주치의. 병원에서 만나든 다른 곳에서 만나든, 의사 가운을 입었든 안 입었든,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상담할 수 있는 의사. 미용실에서, 목욕탕에서, 슈퍼에서 장을 보다가도 마주칠 수 있는 의사. 그게 동네 주치의의 운명인데, 지금 벗은 게 문제겠어?


물론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나와 사는 동네도 다르고 캐나다에는 목욕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나의 주치의 선생님을 동네 목욕탕에서 마주치는 사태는 발생할 일이 없겠지.

동네 주치의 선생님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마주칠 수도 있다는 것 말고도, 나의 병증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 전반을 살펴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추혜인 선생님처럼 몸소 왕진까지 다니신다면, 일상에서 병증을 더 잘 치료할 수 있는 생활 습관에 대한 조언도 톡톡히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추혜인 선생님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아 창립한 의료 협동조합 '살림'은 동네의 든든한 의료 지원 센터가 되었다. 여성주의를 실천하며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한 노력이 책에서 읽힐 정도로 조합 내에 촘촘히 스며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합의 입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고려한 것이 배리어 프리, 장애인들의 접근성이라는 점에서도 과연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P. 259. 여성주의 의료기관은 여성들만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성별, 성별 정체성, 직업, 계급, 인종, 나이, 학력 등에 관계없이 차별 없이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다. 진료실 안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지식 차이로 인한 권력 차이가 생기지 않게, 환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충분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의사가 적절한 조언자이자 동료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여성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 무시당하지 않는 곳이다. 직원들도 누구나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감동이 복받쳐 오르는 기조다. 언제쯤이면 '살림'과 같은 의료기관이 보편이 되는 세상이 올까. 의료 민영화를 은근슬쩍 들이미는 꼴을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차별 없는 의료기관은 요원해 보인다.


공용 자전거를 타고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를 해주는 추혜인 선생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가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를 상상했다. 나의 성별과 계급에 관계없이, 나의 고통을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지도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는 의사 선생님. 지금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왕진을 나가는 선생님은 아니지만, 나의 고통에 진단적 공감을 잘해주시고 적절한 정보를 일러주시며 좋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벌써 썩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혹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왕진을 다니실 수도 있을까?)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은 의료인의 의료 실천 속의 페미니즘을 어렵지 않게 잘 풀어낸 책으로, 쉽게 읽히지만 생각할 거리를 아주 많이 던져주었다. 성 확정 수술을 원하지 않고 호르몬 치료만을 하려는 트랜스젠더의 사례라던가, 미디어에서 비추어지는 여성 암 투병 환자들의 대상화 및 아플 때도 여성스러움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비판, 그리고 돌봄 노동의 주체를 소외시키지 않는 상호 호혜적 돌봄 노동에 관한 이야기 등등.

입 아프더라도 여러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추천하고 다니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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