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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31. 가슴 해방 연대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31. 가슴 해방 연대


캐나다에 올 때 브래지어를 딱 세 벌 가지고 왔었다. 화려한 꽃무늬에 가슴을 잘 모아주기로 유명한 "예쁜" 에블린 브래지어와, 한창 유니클로 세일할 때 샀던 민무늬의 각각 검은색, 베이지색 심리스 브래지어였다. 한때는 예쁘고 야한 속옷들, 겨드랑이 살은 물론이거니와 등살까지 모아서 가슴골을 만들어주는 기능성 속옷들을 사서 모으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날이 많아지자 그저 예쁜 쓰레기들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캐나다를 올때는 셋밖에 남지 않았는데, 대충 캐나다는 겨울이 길고 그 긴 겨울동안엔 옷을 두껍게 입을 테니 브래지어를 입지 않아도 아무도 모르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셋뿐인 브래지어 중 두 개가 캐나다에 온 지 한 달 만에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 하나는 건조기에 넣고 돌렸다가 보풀이 미친 듯이 붙어버려 손쓸 수 없게 되어서 버렸고, 다른 하나는 세탁기의 탈수 과정에서 빨래 망을 탈출해 돌아다니다가 다른 옷과 엉켜서 끈이 엉망진창으로 꼬이고 늘어나서 버려야 했다. 남은 하나는 검은색 심리스 브라였다.

큰맘을 먹고 친구 S의 추천으로 캐나다 속옷 브랜드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사이즈도 다시 재고 이것저것 입어본 다음에 두 벌의 브래지어를 새로 샀다. 둘 모두 와이어가 없는, 각각 검은색과 연보라색의 브래지어였는데 매장에서 입어볼 때는 편하면서도 가슴 모양을 예쁘게 잡아줘서 좋다는 생각에 흔쾌히 결재를 했더랬다.

그리고 3년이 흘렀고, 나는 아직도 세 벌의 브래지어가 있고, 셋 모두 통틀어 입은 적을 손에 꼽을 정도다.

끈이 엉망으로 꼬여 버릴 수밖에 없던 브래지어...

한국에서라고 노브라로 다닌 적이 없진 않았다. 딱히 페미니즘 전사로서 '탈코르셋'을 실천하기 위해서 애쓰느라 노브라를 지향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불편하니까' 자주 입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탈코르셋'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실천을 하는 중이었다. 여성은 불편한 옷을 착용하지 않는 결심조차도 투쟁이 된다.

처음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했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당연했다. 이렇게 불편한데 잘 때까지 편하게 잘 수가 없다고? 가슴이 처질까 봐, 가슴이 더 이상 크지 않을까 봐, 가슴이 너무 커져 버릴까 봐, 갖가지 이유들을 덧붙이면서, 여자들은 집에서 잠을 청할 때도 브래지어를 입어야 했던 세상이었다. 나도 한때는 그런 강박에 브래지어를 입은 채로 잠을 자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잘 때라도 숨 좀 쉬자!


나에게 가슴은 늘 컴플렉스였다. 즐겨 읽던 만화책에서는 풍만한 가슴을 아름답고 섹시한 것으로 그리며, 등과 구별되지 않는 납작한 가슴은 여성성의 부족으로 놀림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늘 가슴이 더 컸으면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슴이 도드라져 성적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큰 가슴을 가진 섹시한 '언니'는 되고 싶었지만, 큰 가슴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걸레'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여성성을 가지되, 남자를 파멸에 몰고 가서는 안 됐다. 그게 바로 보이지 않는 코르셋이었는데, 어릴 적의 나는, 또 나와 비슷하게 자랐던 여자아이들은 그런 코르셋으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는 데 빠르게 익숙해졌다.

내 가슴은 어느 시점부터는 A컵에서 더 커지지 않았고 두 쪽의 크기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짝짝이로 성장이 멈췄다. 여성성이 없는 몸이라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부족했다. 그래서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면 늘 내 가슴이 부끄러웠다. 작고 짝짝이인데다가 예쁘지도 않은 가슴. 그들 앞에서 영원히 브래지어를 벗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브래지어의 힘으로 없는 가슴골을 만들어 성적인 어필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 가슴은 성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었다. 남자들의 가슴이 성적인 코드로 읽히지 않는 것처럼.

명탐정 코난에서도 여자의 가슴은 성적 대상물로서 등장했다!

호주의 해변에서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래사장 위에 손바닥만 한 비치타올을 깔고 앞뒤로 돌아 누워가며 태닝을 한다. 말 그대로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아랫도리만 가린 채로 앞뒤로 노릇노릇 신체를 굽는다. 누드 비치도 아닌, 그냥 내가 갔던 모든 해변에서!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가슴이 무방비하게 드러난 것을 직접 목격한 것이 처음 이어서, 나도 모르게 썬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들 정도로 뚫어지게 바라봤던 것 같다. 그 여자들의 가슴을 보며 야한 상상을 한 건 아니고, 남자들이 가슴을 드러내는 것처럼 여자들도 가슴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물론 아시안의 작고 소중한 유교적 뇌는 내 비키니 탑을 벗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분명 내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었고, 또 어떤 희망의 싹을 틔웠다. 이 불편한 것, 이 가슴을 옥죄는 포승줄 같은 것, 나를 압박하고 구속하는 사슬 같은 것! 이것을 벗어버려도 괜찮다는 희망의 싹이었다.


북미에 사는 사람 중 95%가 시청했다던 '프렌즈'를 다섯 번 정주행하고 나서도 여전히 신기했던 게,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하는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꼭지가 톡 튀어나와 있어서, 쟤 부라자 안 입었네! 하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90년대에 만들어진 그 티브이 시리즈에서는 아무도 그 차림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았다. 그 여자들의 '남자친구'들 중 누구도 자신의 여자친구의 젖꼭지가 티셔츠를 뚫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에 불만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내가 바라는 작은 해방이 여기에 있었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어도 누구에게도 성희롱을 당하지 않는 것.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타인이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

프렌즈의 레이첼,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등장한 씬이 많았다.

캐나다에서는 매일매일이 가슴 해방의 날이다. 한국에서는 한여름엔 도저히 노브라로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나를 오래도록 알아온 사람이 없다는 안도감과,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는 진실과, 나보다 더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사람들이 시내에 돌아다녀도 무례하게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경험이 버무려져서, 이제는 얇은 티셔츠 한 장을 걸쳐도 브래지어를 안 하고 다닐 용기가 생겼다.

아, 물론 TPO(Time, Place, Ocasion 시간, 장소, 상황)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하는 경우에는 불편한 옷을 입기도 한다. 회사 면접을 가는 데 그냥 흰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갈 수 없는 것처럼, 친구의 결혼식에 잠옷을 입고 갈 수는 없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날이 자주 오지는 않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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