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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ug 05. 2022

파친코 - 이민진

파친코

이민진


캐나다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 한 옵션은 아니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 한글로 번역된 '파친코' 책이 있다는 것을 친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마 영영 몰랐을지도 모른다. 영어로 된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과, 실제로 도서관에 가서 영어로 된 책을 빌려서 대출 기한 내에 읽고 반납을 하는 것 사이에는 견우와 직녀 사이의 은하수만큼 아주 먼 거리가 있다. 그러니 마음은 매번 먹었어도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하기엔 더 오랜 기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쨌든 친구 덕분에 온라인으로 도서관에서 미리 책에 예약을 걸어둘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동네 도서관에 회원 가입을 하고 도서관 카드를 발급받고, 또 온라인으로 책을 예약해 두었다. 그랬더니 두어 달 만에 이메일로, 예약된 도서 대출이 가능하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캐나다 동네 도서관에서 첫 도서 대출을 했다. 한국어로 된 책을!


<파친코>는 상, 하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는 책이다. 영문 원서로는 두꺼운 한 권짜리 책으로 나왔는데,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하면서는 아마도 책의 단가 같은 걸 생각해서 두 권으로 나눠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

대출 기간은 2주, 그렇지만 두 권을 일주일 만에 모두 읽어낼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엄청난 흡인력을 뽐내는 책이었다.

이야기는 부산 영도에 살던 소녀 순자의 어머니에서 시작한다. 언청이와 혼인을 해 다 앞선 아이를 다 먼저 떠나 보내고 하나 남은 순자를 애지중지 키워냈지만, 순자는 겉만 번드르르한 놈팽이 한수와 눈이 맞아 임신을 하고 만다. 마침 순자네 집에 하숙을 하고 있던 백요셉은 순자를 돕고자 순자와 혼인을 청하고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다. 순자는 그곳에서 아주 열심히 살며 두 아들을 키워내는데 각각 노아와 모자수(모세)다. 노아는 영리했고 대학에 진학을 해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서는 절망하여 잠적한다. 모자수는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어 세를 확장하고 부를 축척하며 결혼도 하고 아들, 솔로몬을 얻기까지 한다. 솔로몬은 모자수는 미국으로 대학을 가지만 일본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자 하는데, 조선족이라는 신분 탓에 일본에서 차별을 당하게 되면서 아버지, 모자수의 사업을 잇기로 결심한다.

방대한 이야기이니만큼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고, 누구를 중심으로 놓고 보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한 화두를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자꾸만 순자를 돌아봤다. 노아나 모자수, 솔로몬의 서사가 서술되고 있어도, 순자를 살폈다.

순자는 딱 그 시대를 살던 여성의 모습이었다. 순종적이면서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뭐든 다 하는 모습, 주어진 일을 다 해내고 또 없는 일도 찾아서 하는 근면성실함이, 식민지 시대를 살던, 해방 이후의, 그리고 전쟁과 전후를 살던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또한 현대의 여성의 모습도 있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일본이라는 낯선 땅으로 건너가 진취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것이 이 시대의 여성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체성이었다. 물론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한다는 것은 정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아들 노아를 사랑하고 아꼈다. 그 또한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순자 외에도 입체적이고 각양각색인 다양한 여성들이 많이 등장해 각자의 서사를 펼친 것 책의 묘미였다. 각자의 자리에 각자가 처한 상황만큼 딱 불행하고 그만큼 행복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늘 내 상상력을 자극한다.


<파친코>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들의 차별에만 집중하지 않았다던가 일본인들의 폭력성을 더 많이 드러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일본에 살던 조선인 동포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파친코>만큼 촘촘히 들여다본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단순히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차별했던 상황만을 조명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 하나 하나의 각기 다른 고뇌와 고통을 다룬 것이 또다른 매력 포인트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시절 이웃에 살던 가난한 일본인, 조선인만큼이나 차별을 받았던 일본인들의 이야기가 가미되어 있어서인지, 약자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한국 본토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태껏 많았지만, 일본에 남은 동포들, 일본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 듣기 쉽지 않았다. 나도 기껏해야 한국 전쟁 이후에 남한에서는 일본에 있는 동포들을 도우려 하지 않아 많은 수가 북한 국적을 취득했다던가, 조선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차별과 폭력이 심각하는 이야기 정도나 미디어를 통해 들어 알고 있는 정도였다.

물론 <파친코>에서 순자의 손자인 솔로몬은 파친코 사업으로 부유해진 아버지 모자수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까지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지만, 대부분은 아마 노아처럼 신분을 숨긴 채 살거나 혹은 조선인 신분으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파친코 자체가 조선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차별 탓에 조선인의 사업장이 되었으니까.

책을 다 읽었으니 이제 애플TV에서 스트리밍서비스를 해주는 드라마 <파친코>를 봐야할 때가 됐다. 읽을 수록, 이걸 동양인 배우가 아니라 백인 배우로 캐스팅할 수 있도록 각색하려 했다는 다른 제작사들은 얼마나 뇌가 하얀건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 이야기에서 조선(한국)과 일본을 빼면, 그래서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걸 빼면, 뭐가 남는다는 건지. 그래서인지 동양인 배우로 구성하기로 약속한 애플TV만이 좀 제정신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읽은 <파친코>는 문학사상에서 출판한 초판본이고, 최근 재번역 되어 인플루엔셜이라는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초판본에서는 부산 사투리를 잘 살려 번역을 했었는데, 개정판은 어떨지 궁금해서라도 구입해볼 것 같다. 어떻게 구입할 지는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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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 번역본에서는 주인공 이름을 '순자'라고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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