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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ug 15. 2022

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천선란 작가의 작품은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에 수록되어있던 단편 소설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 책에 실렸던 단편 소설에서도 작가의 다정함을 읽을 수 있었는데, 단편집 <어떤 물질의 사랑>을 읽으면서는 작가가 꿈꾸는 세상을 엿볼 수 있었다.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단편집에서 단연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어떤 물질의 사랑>을 꼽고 싶다.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르고 그래서 결국 서로에게는 모두가 외계인이라는 것, 그러니 나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이상하게 보거나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는 메세지는 어떤 위안이 되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 성별이 그 사람과 같아지는 외계인의 이야기는 가히 상상력을 자극할 만했다. 트랜스젠더 이야기로도 읽으려면 읽을 수 있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하면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 가진 본연의 마음을 투영하는 이야기지 않을까.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는 마법의 말, '그럴 수도 있지.'는 내 삶에서도 편견을 이기는 힘으로 작용하곤 했다. 어떻게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타고난 성별과 젠더가 다를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지. 모든 것을 그럴 수도 있다고 허락하기 시작하면 상상력은 더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수 있다. 우리의 상상력에는 꼭 '그럴 수도 있지'가 필요하다.

단편 <사막으로>에서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막을 상상했다. 좋아하는 만화인 타무라 유미의 <바사라>는 사막에서 태어난 운명의 소녀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혁명의 주체가 되는 내용이다. 전혀 상관 없는 내용이지만 사막이라는 배경이라는 공통점만으로도 둘의 내용을 어떻게든 연결짓고 싶었다. 그리고 쏟아질듯한 별을 묘사하는 구간에서는 읽기를 잠시 멈추고 내가 보았던 은하수를 떠올렸다. 지구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곳, 호주의 크레이들 마운틴에서 캠핑을 했던 밤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막에서는 별이 더 꽉 차서 보이겠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움일 것 같았다.

<레시>는 어쩐지 김초엽 작가의 <스펙트럼>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지구가 아닌 다른 공간 -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계인과 나 - 나를 살려준 그 외계인과의 공감, 연대, 그런 것들이 맞닿아 있어서였던 것 같다.

언제나 다른 세계의 다른 생명을 조우하는 것을 상상하면, 자꾸만 다정한 이들을 그리고 싶어진다. 자신보다 나약한 존재에게 한없이 친절을 베푸는 존재. 그리고 인간들도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단편이 빠짐없이 좋았지만, 작가의 말까지 읽어내고 각 작품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바를 확인하고 나니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모두가 마음이 따듯해지고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천선란의 작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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