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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pr 15. 2018

세월이 가면,

4월 16일

어디선가 읽은 기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팠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본인이 4월 16일, 그 날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을 할 것입니다." 아니, 나는 전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4월 16일은 나에게 그런 날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의미 없이 흘러가버린, 그래서 일기를 쓰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가버린 날들과 다를 바 없는 그 하루.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2001년 9월 11일 바다 건너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뉴스로 보았던 그 순간이 더 생생했다. 너무나도 영화 같았던 그 화면들을 지금도 그림으로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지만, 2014년 4월 16일의 뉴스는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단 하나의 목소리는 "전원 구출"을 외치던 속보였다.


실은 하루 이틀 정도인가 지나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전원 구출이라던 속보는 거짓말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비현실적인 실종자 및 사망자 숫자만 뉴스 메인 화면을 잔뜩 메웠다.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원 구출이라며? 절망감에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애써 뉴스를 보지 않으려 했고, SNS에 관련된 이야기가 떠오르면 재빨리 넘겨버렸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현실을 마주 보게 된 것은, 사건 당일로부터 1년이 지난 후였다. 세월호 1주기. 호주 멜번에서 우연히 마주한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들. 나는 감히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머리가 멍해졌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다.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그냥 흘러간 하루에 불과했던 그 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은 수학여행의 즐거움에 들떠있던 고등학생들이었다. 나는 끔찍한 사고들로부터 일부러 거리를 두기 위해 애써왔지만, 어딜 가나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일은 벌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멜번의 야라 강에서 펄럭이는 노란 리본들을 보면서, 나는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https://www.instagram.com/p/1hd96pvL11/


그림을 잘 못 그려 이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그것이 그 당시의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SNS에 게시할 사진을 대충 찍은 후에 그림 원본은 추모 행사를 준비한 주최 측에 전달했다. 이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고,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돌릴 수는 없었겠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세월호 2주기쯤 되었을 때, 어떤 노래를 접했다. 백스프가 작사 작곡하고 문선해가 피처링 한 '꽃이 지네'였다. 2015년 7월 경에 디지털 싱글로 발매가 된 곡인데 나는 좀 뒤늦게 듣게 되었다. 그리고 가사에 젖어들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래가 세월호를 위한 추모의 노래라는 것은 자명했다. 문선해의 잔잔한 음성으로 흘러나오는 가사가 부드럽게 울리는 기타 소리와 어우러져서는 나를 세월호 침몰 당시의 순간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https://youtu.be/GIRTTIkjGlY

물론 이 외에도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느낀 그 감정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다시 체험할 수 없었다. 꽃이 지듯이 너의 예쁜 얼굴이 차가운 저 바닷속으로 지듯이 나의 마음도 차디찬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세월호 4주기가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그 당시의 순간을 명확히 그려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는 추모의 마음들이 모여서 아직도 힘겹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겠지만, 마음을 잃지 않는 것으로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http://sewolho416.org/

*416가족협의회 http://416famil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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